뮤지엄 산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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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재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산책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散(흩을 산) 策(채찍 책)으로 한데 모여있던 것을 채찍으로 이리저리 흩뜨려 놓는다는 뜻으로 가벼운 기분으로 바람을 쐬며 한가롭게 거니는 것을 말한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생각을 흐트러뜨리고 비우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그렇게 산책을 하기 위한 적절한 장소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지난겨울, 비록 제주에서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의 먼 거리지만, 나를 비우고 나를 새롭게 만나는, 산속에 감춰진 뮤지엄 산이 섬광처럼 박힌다. 무거운 마음속 짐들을 내려놓고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딘들 못가리.

Museum SAN(Space Art Nature)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과 물과 자연을 활용한 박물관이다. 드라마 마인의 촬영지라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공간마다 생생히 촬영장면들이 떠오르고, 아하, 그 장소였구나! 탄성이 절로 나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작품 속으로 걸어가다니 설렘의 순간은 소름마저 돋게 한다. 사각, 삼각, 원형의 커다란 콘크리트 공간들은 물과 빛과 바람이 대지와 시린 하늘을, 우리를 연결해 준다. 화살표 따라 이동하는 일반적인 박물관의 전시공간 개념과는 전혀 다른 구조다.

자연스럽게 쪼개어진 돌무더기가 주변 녹색 풍경과 잘 어울린다. 벽을 쌓듯 정성스럽게 둥근 타원형으로 맞물린 주차장은 뮤지엄의 첫인상. 자세히 벽을 들여다보니 직접 사람이 쌓은 모양새다.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서로 다른 인간들이 모여 조화롭게 거대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 같다. 나의 군상도 저 돌담 벽 어딘가에서 제 빛깔로 자리하고 있을까?

하얀 자작나무의 길을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한다. 돌, 바람, 햇빛을 만끽하며 천천히 걷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품에서 건축과 예술이 하모니를 이루는 뮤지엄 산은 소통을 위한 단절의 메시지를 준다. 계절이 전해주는 시간의 변화, 종이와 아날로그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여정 순간들…. 집중하지 않아도 길을 잃지 않고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 사라지고 나타나는 풍경들, 시간의 흐름을 좇아 게으른 발걸음을 옮기니 잔뜩 있던 생각들은 어디론가 흩어져버린다. 생각과 감정이 덜어지니 머릿속이 간결해진다. 마치 엉킨 실타래의 매듭을 풀어낸 듯 상큼하다.

세상이 물 위에 있는 듯 물의 정원이 만들어 낸 여백은 고요하고 눈부셨다. 햇빛이 반사되어 물그림자가 보여주는 일렁이는 모습에 내 마음도 일렁거린다. 나도 가볍게 떠오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건축물을 중심으로 하늘을, 하늘을 배경으로 물을, 회색 벽 틈새 사이로 들어오는 오묘한 한 줄기 빛에 배경이 되고 작품이 되어 웃는 내 모습을 덧대어 본다. 빛나는 얼굴 행복한 웃음소리, 나를 찾아가는 순례의 발걸음들…. 이 순간들을 끌어안는다. 잊히지 않을 기분 좋은 만남이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바닥에 다양한 빛의 패턴이 그려지는 명상관에서 늘 바깥으로 기울어진 두 귀를 안으로 돌려 나의 목소리에 집중해 본다. 싱잉볼 소리를 들으며 오롯이 묵상하는 시간, 침묵 속에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본다.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찾게 해줬다. 뮤지엄 산에 빠진 하루, 나를 발견하는 산책의 기쁨, 살아갈 힘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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