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을 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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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산세가 ㅅ자형인데, 그 품으로 아담한 이층집이 들앉았다. 아랫동네의 목가적인 풍경이 이국적이다. 완만한 언덕을 끼고, 수량이 그리 많지 않은 개울물이 졸졸 흐른다. 길섶에는 쑥과 냉이가 지천이다. 흔하던 나물이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최근에는 쉽게 만날 수 없던 것들이다. 비 그친 후, 쑥을 푸지게 뜯어 쑥개떡으로 향기로운 봄맛을 만끽했다.

게으름 피우듯 느긋하게 해가 들었다. 거실 깊숙이 들어온 볕이 좋아 몸을 뒹굴며 해 바라기를하며 놀았다. 농익어가는 봄날 오후, 훈풍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상큼한 산 냄새가 폐 깊숙이 파고들어 가슴이 알싸하다. 바람이 숲을 헤집을 때마다, 산벚나무의 연분홍 꽃이 푸른 소나무 사이에서 물감처럼 일렁인다.

노상 단단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 길을 걷던 발이 푹신한 흙길로 접어들었다. 모처럼 순수한 땅의 기운을 온몸으로 들이고 싶다. 지친 심신을 위해 귀한 피톤치드를 가슴을 펴 흠뻑 받아들인다. 산기슭엔 가랑잎이 수북이 쌓여 스펀지처럼 푹신하다. 귀한 생명체가 아직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잠들어 있을지 몰라 발길이 조심스럽다.

윤달 이월 보름이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하 교교해 커튼을 걷었다. 잣나무 우듬지에 걸린 달을 마주 보고 누웠다. 이 순간 머릿속에 무엇을 넣고 비우는 일은 의미가 없다. 밤새 달빛에 취해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주위는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하고, 홀로 존재하는 듯 깊은 외로움이 엄습한다.

잠깐 눈붙였다 맞은 아침이지만 상쾌하다. 아파트에선 생활 소음이 잠을 깨우지만, 산새들이 어찌나 부산하게 지저귀는지. 뒷산을 창안으로 불러들인 주방이다. 싱그러운 풍경을 마주 보며 빚어낸 식탁에 봄 내음이 가득하다. 산 냄새 밴 향기로운 산나물이 깔깔한 입맛에 풋풋한 위로가 된다. 늘 내 손을 거처야 하는 먹거리. 그저 그런 맛에 신물이 나던 터다. 남이 지은 한 끼의 밥에 늘 목이 말랐다. 허기진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포만감, 보글보글 끓인 냉이 강된장에 입이 행복하다.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받아먹기만 한 호사를 누렸다.

동생네가 지은 유럽풍의 전원주택이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는, 친정집으로 여기라는 말에 입이 벙긋 벌어졌다. 한때 전원주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에게 친정은 지친 일상을 위로받는 쉼표 같은 곳이다. 태어난 고향과 유년 시절을 보낸 외가가 친정처럼 가고 싶은 곳이었다.

노년의 여자에겐 만만하게 드나들 곳이 별로 없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친정도 자연 멀게 느껴진다. 달갑지 않게 노년이 되었다는 허무한 마음, 속 터놓고 두 다리 뻗고 앉아 밥 한술 얻어먹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즈음이면 형제자매의 우애가 더 돈독해진다. 서로 나이 듦을 애석해하며 의지할 기둥이 되는 존재가 된다. 동생이 맞아주는 고향의 친정 같은 집, 늘그막에 내게 친정이 생겼다.

야무진 손에 텃밭에선 파릇파릇 움이 튼다. 땅심이 길러낸 채소는 보약이다. 새 터전에 뿌리를 내리는 동생네의 소중한 먹거리가 될 것이다. 해 잘 드는 밭 한쪽에 구덩이를 팠다. 내 뜰에 키우고 싶었던 감나무와 라일락을 심었다. 진달래꽃은 곁의 산에 지천으로 필 테고. 주인을 닮아 후덕한 그늘을 내리는 나무가 되어, 오가는 이의 쉼터가 되길 바라며 물을 흠뻑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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