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話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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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한때, 시골 하늘 아래서 자란 새는 불만으로 투덜거렸다. 실은 막연한 헛바람 같은 것이었지만, 새는 몹시 부대꼈다. 무엇에 씌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년설로 뒤덮인 세상을 굽어보려 더 높이 날고 싶고, 기름진 먹이를 얻기 위해 또 더 호화로운 옷으로 감싸려 큰 숲을 찾아 더 멀리 날고 싶었다. 호의호식에 눈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우심한 방황을 불렀고, 갈수록 가파른 갈등의 시간에 목이 탔디. 주변과의 관계까지 엉성해지면서 늘 혼자 외로웠다. 날로 헛 날갯짓이 쌓이면서 견고해 가는 고독의 울안에 갇혀 삶의 의미마저 흔들려 갔다.

그렇게 욕망의 노예가 된 한 마리의 새 앞으로 나부끼며 오는 깃발이 있었다. 화두(話頭)였다. ‘방하착(放下着)하라.’ 산문의 언어라 할 게 아니다. 관심을 두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얘기할 만한 것이면 그게 곧 화두다. 話는 말, 頭는 머리이니 앞서간다는 뜻, 말보다 앞서가는 언어 이전의 그것, 바로 선원(禪院)의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란 의미다.

화두엔, 중생의 마음은 흐리고 어리석다는 뜻을 지닌다. 도업(道業)을 쌓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게 그들이다. 속된 ‘나’는 본래의 텅 빈 마음자리, 청정심이 아니다. 맑고 밝은 마음자리를 잃어 무엇이든 잡으려는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즉 모든 걸림과 탐심에서 떠나 본래 ‘참 나’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 방하착하라는 것이다.

放下는 ‘내려놓으라·놓아버리라·비우라·버려라 함이고, 着은 명령형인 방하를 강조하기 위한 어조사다. 숨도 갈아 쉴 틈 없이 눈앞으로 떨어지는 불호령 같은 지엄한 명령이다. 본래의 공(空)한 이치, 무아(無我)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온갖 것들에 마음 걸리는 바를 당장에 놓아버려라, 헛된 욕심을 품지 말라는 말이다.

더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전히 내려놓는 것, 이런 경지에 도달하면 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생각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간직하라는 뜻, 텅 빈 마음 즉 실재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이 또한 지나간다고 여기면 괜히 들뜨지 않고 쉽게 괴로워하지 않게 되니, 인생살이가 수월하다고 느껴진다 함이다.

조주 화상에게 엄양 스님이 물었다. “한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합니까?” 참선에서는 ‘한 물건’도 지니지 말라 한다. 그게 물질적인 것보다도 우리 마음으로 시(是)야, 비(非)야, 좋다, 궂다, 이쁘다. 밉다 하는 것이다.

화상스님의 말씀하기를 “놔 버려라. 방하착하라.” 하니까, 그 스님 말이 “한 물건도 지니고 있지 않은데 무엇을 놓을 것입니까? 지니고 있어야 놓을 것인데, 지니고 있는 게 없는데 새삼스레 무엇을 놓을 것입니까?” 조주 화상 이르기를, “그렇다면 다시 짊어지고 가거라.” 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편히 가져 가라는 것이다다.

한 마리 새가 이제 늘그막이다. 날개가 낡아 있고 눈앞이 흐려 시야 확보가 힘들다. 그 먼 곳은 꿈속의 일이 돼 버렸다. 번쩍 정신이 든다. 무아의 이치를 깨달아 ‘나, 내 것에만 매달려 이를 잡으려는 어리석은 아집을 확 내놓아 버려야겠다. 온갖 번뇌·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이 얽혀 있는 모두를 홀가분하게 벗어던지자. 방하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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