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곳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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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용 수필가

해안도로 쪽으로 핸들을 틀어 얼마쯤 달렸을까, 판타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어느 지점에서 길을 잃었다.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급기야 길이 아닌 곳에서 차를 세웠다. 막다른 어느 집 마당이었다.

내비게이션은 새롭게 길을 안내했지만 그것을 무시한 채 차를 돌렸다. 어떤 식으로든 길은 연결돼 있으니 크게 당황할 일이 아니었다.

날씨는 쾌청했다. 1년 전 6월의 하늘이 가을 저만치를 달리는 듯 높고 푸르렀다. 라디오주파수를 가요프로그램에 맞춘 후 노래 따라 흥얼거렸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익숙한 듯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닥였다. 차창을 내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속도 낮춰 달리다가 애월의 바닷가 한 브런치카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리 넓지 않은 카페였다. 나는 너른 바다 쪽을 향해 앉았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 바위에 걸터앉은 사람, 아이들과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이 앵글 안 피사체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한여름이 되기 전이어서일까, 바닷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시원하게 치고 들어왔다. 점원이 보여 준 메뉴판에서 그곳 시그니처 메뉴인 돈가스버거와 수제맥주를 고른 후 음식이 나오는 동안 테라스로 나가 먼 바다를 사진기에 담았다.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배경. 그 배경 안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획을 긋듯 날아갔다. 그 사이 젊은 연인이 순하게 생긴 커다란 강아지를 데리고 옆자리에 앉았다. 훈련이 잘 된 강아지는 주인 옆에 얌전히 앉아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꼬리를 흔들었다. 사람도 강아지도 바람도 이 식당에서는 자유로웠다.

처음 접한 돈가스버거를 한입 베물면서 순간 놀랐다. 바삭하게 튀긴 두툼한 돈가스를 통째로, 갖은 야채와 특제소스를 뿌려 내온 그 맛에 놀라 먹고 또 먹었다. 차가운 채소와 곁들인 뜨거운 돈가스의 식감이 특별했다. 사이즈가 큰 편이었는데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배가 고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반쯤 남은 맥주를 몇 모금 삼키면서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씹을 때마다 맛있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게 하는 돈가스버거. 이런 맛집이 있다니. 그들이 홍보를 덜한 것인지, 유명한 맛집인데 나만 모른 것인지 여하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식당을 나와 서귀포 쪽으로 한참을 달리면서 아차 싶었다. 명함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식당 이름이라도 알아둘 걸 하는 생각이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계속 들었다.

계획도 없이 떠난 모처럼 만의 여행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뒤엉켰다. 첫날 길을 잃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음 날 이름 모를 바닷가로 가 겁도 없이 이끼 낀 바위에 올랐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져 오른쪽 몸과 얼굴에 시퍼런 멍을 들인 일하며, 그로 인해 낯선 병원 침상에서 검사를 마치는 동안 멍청하게 누워있었던 것. 그리고 그 지경에서도 병원으로 달리면서 도로가에서 산 제주 감귤이 차 안에 잘 있는지 궁금해 했던 것.

당황하면 동동댈 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그날 길을 잃었을 때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아니어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되었다. 그런 걸 생각도 못하고 놓친 길에서 마냥 헤맸다. 그 덕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었고, 일정에 없던 처음 간 해변에서 봉변을 당했다.

그곳에 가라면 다시 갈 수 있을까. 검색하면 찾는 일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그곳에 가게 된다면 처음인 것처럼 더듬거리며 가고 싶다. 굳이 그 집을 찾지 못해도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길을 잃으면 잃어버린 그 길에서 새로운 것들과 만나고 싶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닌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과 끊임없이 만나고 그것들과 익숙해지려할 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마는 것.

길을 잃고 몸을 다쳤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기억이다. 그렇기에 문득 그때가 생각나면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어진다.

그런데 나는, 그 곳을 찾아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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