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어머니의 인생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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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 논설위원

‘이제는 다 살아진 거 담다.’ 백년을 살아내신 어머니의 독백이다. 3월 22일, 생신 때만 해도 목소리에 힘이 있으셨던 어머니가, 요즘 들어 기운이 없으시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조신다. “사름 사는 게 혼이 싯저. 어머니 생각허지 말곡, 혼자서 펜안히 살라 이! 울지 말곡.”

그런데 눈물이 난다. 이어진 당부가, ‘쓸 데 어신 걱정 말고, 저들지 말라’신다. 사실 50대까지만 해도 입에서 걱정이 끊어지지 않던 어머니다. 저녁밥을 들고 나서 제주신문을 정독한 후 일찌감치 잠자리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그렇게도 야속해 하셨다. ‘낼 아침 되민, 아이들이 배롱배롱 눈을 떠서, 학교에 갈 돈들 도랜 헐건디….’라면서. 하지만 2남7녀가 두 살 터울로 줄을 서서 손을 벌릴 텐데, 무슨 수로 일거에 해결한단 말인가. ‘게매, 걱정 해영 된댄 허민, 나도 밤새낭 걱정만 허크라’ 하시던 아버지. 그때가 생각나시는 걸까. ‘허태행씨는 어디로 가셨냐’며,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찾으신다.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도 어머니로부터 이름을 불려본 적 없는 아버지가, 그렇게 좋으신지 가족사진 속에서 오래토록 웃으신다.

되돌아보니, 하루도 그칠 날 없던 그때의 걱정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걱정도 팔자’라는 어머니의 얼굴이 구름 없는 하늘처럼 해맑기만 하다. 그래서 가족은 다투면서 닮아가는 창조주의 걸작인가. 아버지의 반쪽처럼 비슷해진 어머니같이,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닮아 갈 차례다. 그 어머니가 정색을 하고서 다시 입을 여신다. ‘아이들한테 잘해주라’고. 사실 2남7녀를 두신 어머니는 평생 동안 당신을 위해 사신 적이 없다. 그럼에도 노상, ‘니네들헌티 잘 해주지 못해연 미안허다’ 하신다.

자식들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회한은 다함이 없다. ‘고망 터진 옷도 입엉 댕겨사 후제 잘 살아진다’면서, 비오는 날이면 옹기종기 불러 모아 바느질을 가르치던 어머니. 아직도 좋은 옷을 입혀주지 못한 게 무거운 마음. 그래도 명절이 다가오면 시장에서 천을 떠다가 밤새 재봉틀을 돌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닳고 닳아서 손금이 없어진 어머니의 두 손. 그 어머니를 부둥켜안고서, 그 사랑 때문에 슬프고 아프다. ‘사랑 있는 고생이 기쁨이었다’는 김형석 교수님의 백세 고백처럼, 어머니의 100년 세월이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려 한다.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같은 분들과 제주장수복지연구원을 만들었다. 백세가 다 된 어머니를 놔두고, 일자리를 따라 서울로 갈 수가 없어서다. 그 어머니 덕분에 ‘장수의 비결’을 전하고 다닌다. 요즘은 특강강사도 직업이 되는 모양이다. 모슬포에서 성산포까지 서귀포시의 모든 노인대학들이 특강의 문을 열어주었다. 참, 제주시를 대표하는 제주시노인대학에서도 같은 주제의 강의를 요청하였다. 머리가 새하얀 대학생들이 100세 어머니의 ‘인생 당부’를 귀 기울여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김형석 교수님의 인생사보다, 제주도 어머니의 해녀담에 더 고개를 끄덕인다. ‘관광도시’라는 명성도 좋지만, ‘장수의 섬’이라는 타이틀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는 노인대학생들. 제주도는 2022년 12월 말 현재, 85세 이상 초고령인구 비율인 ‘장수도’가 12.56%, 17개 시·도 중 4번째다.

이제는 제주도 어머니들이 당신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한다. 5월, 이 한 달만이라도 제주도 어머니들의 행복도가 1등이 되기를. 그리고 걱정하지 말고, 아이들한테 잘해주고저!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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