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횡단보도
꽃피는 횡단보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안혜주 수필가

가볍게 산책길에 나섰다. 가방에 스마트폰을 담고 귀에는 이어폰을 낀 채 횡단보도 앞에 섰다. 빨간색 보행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자 난 빠른 걸음으로 건너기 시작했다. 거의 다 건널 무렵 신호대기 앞에 정지해 있던 한 운전자가 내게 무어라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도로의 소음이 너무 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따라가 보니 막 지나온 횡단보도에 내 핸드폰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가방이 흔들리며 지퍼 사이로 새어 나온 모양이다. 핸드폰을 주워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몸을 돌리니 여전히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잃어버릴 뻔한 물건을 찾아 다행이라는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놀라고 감사한 순간이던지. 요즘은 재산목록 1호가 핸드폰이라 할 만큼 자신의 모든 정보가 기기 안에 저장되어 있다. 거래하는 은행이며 지인들의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남모를 일기까지 빼곡히 담겨있다. 외출 시에는 핸드폰 하나만 들고 나가도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분신처럼 여기는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어쩌면 자신의 전 재산을 잃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분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핸드폰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물건을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마음부터가 배려의 시작이다. 부정을 부정으로 풀면 부정의 힘이 강해지고 긍정을 긍정으로 풀면 긍정의 힘이 커진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로 삶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향상됐다는 어느 가수의 말이 생각난다.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로운 자리이타라는 말,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니 배려하는 마음은 보람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모르는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 횡단보도, 차가 멈추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멈추면 차가 달린다. 서로 멈추어 있는 동안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다리를 수술했던 분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 중, 보행자 신호등이 꺼질 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체적 약자를 부축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렸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는 위험한 횡단보도 위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얼마 전 보행자 보호를 위한 우회전 일시 정지법이 만들어졌다. 3 개월의 계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법이 시행됐지만 안심하기엔 여전히 이른 느낌이다. 불법 우회전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뒤따라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게 아닌가. 시행된 지 얼마 안 돼 몰라서 그런다고 하지만 알려고 노력할 때 꽃을 피운다. 그 길을 지나갈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 연인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자. 밝고 행복한 표정이 그려지지 않는가.

비가 많이 내렸다. 도로는 더 말끔해졌다. 그 위에 새로운 법이 건전하게 정착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겠다. 질서라는 꽃을 피워 안심의 열매가 열릴 때까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