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생각나는 숫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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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숫자를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학생 때 수학 과목을 싫어했던 푼수로 이가 맞지 않는 얘긴데, 모를 일이다. 전화번호에 집중했는데 이젠 느슨해졌다. 핸드폰이 있잖은가. 최근 기록을 보고 누르면 된다. 머리에 넣어 뇌까지 수고를 끼칠 일이 아니다. 숫자 따위에 집착해 버둥거릴 것 없이 편하고 한가롭게 사는 게 보편적 방식이 된 세상이다.

한데도 그쪽에 익숙해선지 나는 숫자에 꽤 민감한 편이다. 습관은 달라붙으면 떼어지지 않아 제2의 천성이 돼 버린곤 한다. 특히 조상의 기일을 암기해 두면 먼 데 나가 있을 때도 좋다. 젊었을 때는 이런 자그만 일이 아내에게 신뢰를 얻게 유효했다.

무슨 소소한 일에도 딴은 연유가 있는 거라 뒤적이다 보면 생각이 닿는다. 70년대 대입 진학반 고3을 연거푸 담임하면서 무의식중에 생긴 버릇이 하나 있었다. 그 당시 고교 한 학급 정원은 자그마치 60명이 넘었다.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면, 이름을 외우는 게 급선무인데, 이왕이면 번호까지 머릿속에 입력하자는 쪽으로 갔다. 2주 만에 외우는 걸 눈치챈 학생들이 놀라워했다. 그 바람에 숫자를 머리에 넣어두는 습관이 생겼는지 모른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 내게 습관 하나를 만들어 놓은 셈인지 모른다. 몸에 배었구나 하면서도 좋은 건지는 굳이 따져 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3년 동안 학원강사를 한 적이 있다. 시내에 있던 D 고교로 다시 복귀하면서 귀향할 때, 차를 뽑고 왔다. 현대차 프레스토 아멕스, 차량 번호 7853. 난생처음 산 차다. 35,6년이 지난 일인데도 번호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서울서 타다 몰고온 아내도, 그때 스무 살이 넘었던 두 아들도 번호가 캄캄이란다. 마이 카의 감격이 번호를 낙인으로 찍어놨는가. 또 집에 들어온 첫 전화 번호 2-980…7.

또 잊히지 않는 숫자가 있다. ‘98’.

과거를 불러들인다. 39세 때, 나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위 수술을 받아 보름 동안 입원했었다. 한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서울에 내가 입원한 걸 어떻게 알았을까. 문병의 발길이 이어졌다. 70년대에 고3이던 J고 졸업생들. 하루에 3,4명 꼴로 이어지는 바람에 놀라움이 작지 않았다. 6인 병실이었다. 환자들이, ‘제주 사람인데 웬 문병객이 끊이지 않느냐.’ 한다. 서울로 진학한 대학생들이라 하자, 제주도 학생들은 그렇게 머리가 좋으냐고 감탄하던 게 떠오른다.

문병 온 제자가 ‘98’명이었다. 머리맡에 음료수가 쌓여 병실에 나눴다. 그새 43년이 지나면서 얼굴과 이름이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다. 또 스승의 날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감회가 새롭다. 제자들이 병실에 들고 온 음료수의 의미를 새겨보게 된다. 제자가 옛 선생의 문병을 위해 갖고 온 그걸 나쁘게 얘기한다면, 세상이 너무 메마른 게 아닐까 싶어 여든두 살의 늙은 선생, 가슴을 쓸어내린다.

왜 선생님들을 정시하지 않고 흘겨보는가. 공무원 사회의 청렴 운운하지만, 교직이야말로 이 시대 청렴의 마지막 보루 아닌가.

스승의 날이 맑게 활짝 개어, 마음 열고 사제 간이 함께 웃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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