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락거리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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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 시인/수필가

“이 선생님, 왼쪽 모퉁이에 있는 빨간색 집 쪽으로 좀 나오실래요?”

“예, 안 선생님! 안녕하세요? 금방 가도록하겠습니다.”

밖은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고 바닷가의 작은 모래알들이 맹렬하게 뺨을 때리고 있었다. 옷을 움켜잡고 집 앞으로 갔다.

“선생님, 사무실로 들어오시지 않고 웬일이세요?”

“아, 이것 좀 받으세요. 아침에 바다에 가서 바지락을 조금 캐 왔어요. 요즘 봄이라 된장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구수한 맛이 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요! 정말 힘들게 캤을 텐데! 예,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안 선생님이 동네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서 가져온 것이었다. 너무도 성실하고 빈틈없는 선생님이 아마도 물때에 맞춰 이른 새벽에 바다에 나갔다가 잠깐 사무실로 들린 것 같았다. 너무도 심한 바람과 휘날리는 모래 더미에 밖에 오래 서있을 수 없었다.

봄에 맞는 바다의 향기를 전해준 안 선생님 덕택에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은 구수한 바지락 된장국으로 입이 호강했다. 사실 섬나라 제주지만 어느 곳에 가든지 요즘은 조개든 보말(제주 바닷 고동)이든 해초든 찾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모든 해안가는 거의 해녀나 어촌계 등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바닷가엔 아예 접근할 생각도 못 한다.

제주의 봄은 몇 가지 봄맞이 생물들로 시작과 끝을 알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고사리와 쑥일 것이다. 나도 며칠 전에 혼자 고사리 사냥을 다녀왔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다섯 시 반 쯤에 집을 나섰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고사리 밭에 이르니 아직은 사위가 조금 어두웠다. 초입부터 조그만 고사리들이 앙증맞은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주먹처럼 보이는 고사리는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고 부드럽다. 어둔 숲속을 바스락거리며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다섯 손가락을 움켜잡고 대지를 향해 솟아오른 것이다. 한두 사람 보이지만 아마 오늘은 아마 내가 처음 이 고사리 밭을 방문한 것 같았다.

이 곳은 고사리가 늦게 나오는 지역이다. 아직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편히 꺾었다. 두어 시간 꺾으니 가방이 가득하다. 가방이 무거워서 그늘에서 쉰다. 이제 마쳐야 할 것 같다. 이제 차로 내려와 가져간 간식과 생수를 들이키며 둘러보니 수많은 차량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집에 와서 고사리를 삶고 물에 담궈두었다. 고사리 관리하는 방법을 집사람이 몇 년 전에 나에게 잘 교육시켰다. 소금 넣고 끓인 물에 고사리를 넣고 두어 번 다시 끓으면 건져내어 물에 담그면 된다. 말릴 것은 조금 일찍 바로 먹을 것은 조금 더 삶으면 된다. 이제 일년 간의 고사리 음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 지난 주엔 어스름 즈음 바닷가로 쑥 사냥을 나갔었다. 작년에 쑥을 좀 캐다가 차로 만들어 일년간 마시니 속도 깨끗하고 마음도 편했었다. 요즘 아침 식탁엔 쑥을 메밀에 섞어 기름에 부친 쑥버무리가 자주 식탁에 오른다. 어떤 친구가 말하길 히로시마 원폭 후에 가장 먼저 머리를 들고 나온 식물이 쑥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생명력이 저항력이 강한 식물이라는 뜻일 것이다.

퇴임 후에 별로 특이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항상 허둥대며 소일하면서도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나는 해마다 봄엔 고사리 꺾기, 쑥 캐기 등으로 며칠간은 기대와 즐거움으로 기다리고 보낸다. 두어 차례 고사리 꺾다가 길을 잃은 적도 있었지마는 다시 그 두려움을 즐겁게 기다라는 심경을 누구는 이해할 것이다. 입가에서 바스락거리는 바지락의 향미와 바스락거리며 올라오는 고사리의 앙증맞은 귀여움, 그리고 알싸하고 깨끗한 쑥 향으로 나의 봄은 이미 빛나고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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