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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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처음 역사에 관심 가질 때는 재미있을 거 같아서 시작했는데,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역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학문적인 입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를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쉬워 보이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역사학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인생이나 역사나 비슷해 보인다.

1차대전 당시에 영국의 어느 젊은 역사학자가 골치 아픈 역사 공부를 계속하느니 아예 전쟁터에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군에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훈련소 강의 첫 시간에 교관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먼저 우리 부대의 역사를 소개하겠다.” 역사라는 말을 피하려고 군에 입대한 것인데, 군에 들어가자마자 역사라는 말부터 들어야 했다. 역사를 피하려고 전쟁터까지 도망간 것인데 거기서도 역사를 피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역사를 피해갈 수 없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서 넘어가기 어려운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나타날 때가 있다. 역사 환경이 험악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지나온 깊은 골짜기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너무 커서 그럴 때도 있다. 그래도 앞으로 함께 가야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대화 가능한 길을 열어가야 하는 것이 역사 학도들에게 주어진 과제요 사명일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역사의 아이러니(irony)’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있다. 2차대전에서 히틀러의 독일에게 가장 먼저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사회주의 소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 히틀러를 쓰러트린 사회주의 소련 덕분에, 서구의 국가들이 오늘날과 같은 자유주의적 의회민주주의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구의 많은 국가들이 히틀러의 권위주의 체제 비슷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여 어느만큼 힘을 갖춘 소련이 히틀러의 군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기 때문에, 서구의 국가들이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와 의회민주주의의 견고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하는 셈이다. 자신의 적대 진영을 위해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나서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자기부정의 함성과 함께 사회주의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져갔으니…. 역사의 흐름에는 우리가 생각지 못한 아이러니들이 가득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정상적인 논리 절차로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지점에서 아이러니는 생각지 못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제까지 굳건히 지녀온 자신의 사고방식을 다른 방향에서 재고하고 검토해보라는 것이요. 자신과는 다른 입장에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하는 사람들의 의도일 것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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