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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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시조시인

여행의 참맛은 낯선 문화에 대한 경이로움과 현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감동이다. 이런 기대를 안고 우즈벡 여행을 떠났다. 사방이 다른 나라로 둘러싸인 우즈베키스탄(우즈벡)은 이중내륙구조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면의 바다로 쌓인 제주도와 같이 흡사한 느낌이다. 게다가 척박한 땅을 일구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제주 사람들처럼 어디에도 굽히지 않는 의연함이 있다. 실크로드 따라 만년설을 적시며 사막을 넘어온 태고의 먼지를 품은 도시 언저리, 고향 뒷동산에 무리 지어 핀 하얀 찔레꽃처럼, 섬 속의 섬으로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 고려인.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알까.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열차에 실린 17여만 명은 낯설고 물선 황량한 중앙아시아 벌판에 툭툭 짐처럼 내려졌다. 북방의 용맹을 떨치던 고려, 고구려 민족을 아는 지역 사람들은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된 우리 민족을 고려인(카레이스키)이라 불렀다. 이제는 4세, 5세까지 뿌리내렸다. 제주사람들이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말은 이곳에도 통하는 듯했다. 반찬가게 고려인 아줌마, 여행사의 고려인 4세, 공원 벤치에서 담소 나누는 고려인 할머니들, 그들의 표정은 행복했고, 담담하면서도 다정했다.

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아리랑 요양원을 방문했다. 이 주변 역시 고려인 마을이다. 평화로운 전원풍경이 우리 농촌 모습과 비슷하다. 큰 미루나무 이파리가 윤내며 살랑거리는 풍경 안으로 들어섰다. 코로나 이후 1세대가 많이 돌아가셨다는 안내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름은 러시아식이어도 성은 김, 이, 박씨인 어르신들. 수줍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 역력하다. 한국어로 인사하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러시아말밖에 몰랐다. 대한민국 제주도를 아시냐는 물음에 연신 고맙다며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리랑 노래를 4절까지 유창하게 부르시는 할머니 가슴엔 분명 고국이라는 끈을 꽉 잡고 싶은 간절함일 거다. 눈빛으로, 손짓으로, 표정으로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온다. 이 땅에서 수고로움이 부디 편안한 여생으로 보상받길 바라며 요양원을 나왔다.

교육열과 근면성 하나로 버텨온 고려인들은 우즈벡이 옛 소련연방에서 분리 독립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토박이처럼 살고 있다. 고려인 사회에 구심점이 된 두 인물, 김병화와 황만금은 집단공동체를 이끌며 농업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로, 노동영웅 칭호를 받은 전설적인 지도자다. 황만금 기념관엔 집단농장 시절, 삶의 면면들이 흑백 사진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살아 온 시간을 이어 요즘의 삶의 이야기까지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고려인들의 80년사를 고려인 작가와 인터넷 영상작가가 기록하여 유튜브를 통해 알린단다. 한민족의 우수성과 공동체 단결을 실감하며, 어느 소수민족보다 참고 견뎠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음식, 놀이문화, 명절 등 전통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며 요즘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새로운 풍조들이 오버랩 된다. 한국보다 더 한국적이라는 봉사단 선생님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벼랑 끝에 섰던 사람들, 자긍심으로 버텨낸 고려인들은 우즈벡 사원의 아라베스크 문양만큼 올곧고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다. 어딘가 다른 세계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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