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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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언, 시인·수필가

토요일 아침 일찍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코로나 확진 5일이 지나 다시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다. 8시 30분부터 시작한다는데 7시 40분쯤 도착해보니 이미 노인들 몇 명이 접수 서식에 기본 사항을 적고 대기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하나둘 진료받을 사람들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어린이 한 명과 젊은이 두 명을 빼곤 전부 노인들이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몇몇이 기침하고 콜록거리기도 한다.

가는 세월을 어찌 막을 것인가. 팔팔한 젊음은 어디로 가고 검버섯 피어난 주름진 얼굴로 구부러진 허리 휘청이며 걸어왔을 모습이 선연하다. 어쩌면 내 모습일 테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자고 마음먹는데도 막상 닥치면 그게 잘 안된다.

석가탄신일 아침 깨었을 때 몸이 노곤하고 목이 까칠까칠했다. 감기가 찾아왔나 싶어 약상자를 뒤적여 감기약을 찾아 먹으며 침대에서 뒤척이기 시작했다. 열이 많이 나거나 통증이 심한 곳은 없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푹 쉬면 낫겠거니 생각하며 잠시 겉잠에 들다가 TV 채널을 돌리기도 하면서 이틀을 버텼다.

아뿔싸, 월요일이 대체휴일이라니. 주사라도 한 대 맞을 요량으로 동네 연중 휴무 병원을 알아보았다. 전화 예약도 안 받는다기에 아들이 직접 찾아가 접수했는데 오후 시간이었다. 내과와 소아과를 겸해서인지 어린이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에도 몇이 찾아왔다가 접수가 마감되어 허탈하게 돌아갔다.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젊은 여의사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체온을 재더니 열이 좀 난다며 코로나 검사를 했다. 신속항원검사였다. 몇 분 만에 양성이라 판명한다. 이럴 수가! 코로나 백신을 4차까지 접종했는데 나를 비켜 가지 않다니 어디서 전염된 걸까. 의심되는 상황도 떠오르지 않는다. 5월 말까지 자가격리가 의무라며 5일 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열두 시간마다 네 알씩 먹는 몰뉴피라비르와 매 식후 먹는 약들이었다. 진료비와 약값을 합쳐도 만원이 안 되니 국민건강보험의 고마움을 다시 실감했다.

막상 확진자가 되니 은근히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다행히 이틀 동안 인후통 외엔 별다른 증세가 없었다. 3일 차부터는 거의 증상을 느끼지 못해 독감보다 약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아마도 백신 접종과 약의 효과일 테다. 그래도 내 방을 나서면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썼고 식사를 따로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수많은 사망자를 내며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 감염병을 극복하느라 전 세계가 진력한 지 3년이 넘었다. 우리 의료진들도 피나는 헌신과 노력으로 팬데믹을 헤쳐왔다. 그 결과 6월부터 코로나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됐다. 사실상 엔데믹(풍토병) 시대를 맞고 있지만, 계절 독감처럼 여기기엔 불안이 앞선다. 감염병엔 예방접종과 위생 생활로 예방 노력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경구는 건강할 때 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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