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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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음식 먹는 방송의 줄임말이 먹방이다. 이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2008년 인터넷방송에서 비롯했다는 데 힘이 실린다. ‘방장’ 자신이 음식을 직접 먹으며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하거나 먹음직한 현장감을 전해 방송 시청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아프리카TV에서 음식을 ‘먹기만 하면서 찍는 방송’이 눈길을 끌면서 알려졌다. 이를테면 몇몇 먹방들이 후룩후룩 쩝쩝하면서 의도적으로 먹는 소리를 크게 내는 게 먹방의 포인트다. 더러 20인분의 음식을 끄떡없이 소화해 낸다. 위의 팽창·수축을 되풀이하면서. 보통 사람 이상의 근육량을 갖고 있어 가능한 걸까.

30년 넘는 장수 프로그램 KBS의 ‘6시 내 고향’을 봐도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농가를 찾아가 그곳 특산물로 요리한 음식을 걸판지게 먹는 그런 식 아닌가. 마침 배가 출출할 시간인 데다 시종 먹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니 여지없는 먹방이다.

‘한국인의 밥상’이니 ‘팔도 밥상’이니 하는 프로도 그만그만해 보인다. 전통시장이나 섬을 순회하면서 리포터가 기름기 번지르르한 음식을 푸지게 먹어대는 장면을 클로즈업하는 것들도 한결같은 먹방 부류 아닌가. 이런 먹방 쪽 흐름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라 때로는 아예 식상해 채널을 교양 프로로 돌려 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한 끼니를 채우지 못해 배가 등에 붙어 있는 도시 빈민들을 한 번쯤 떠올렸으면 어떨지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어디 이게 어제오늘의 일인가.

이런 방송을 보고 자란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박혀 있을 들구 먹는 먹방의 영상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지나치게 먹는 것을 혐오할 것도 염두에 두는 건 어떨는지, 가는 곳마다 먹자골목인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흥청망청 먹어대는 세상이다.

먹다 보니 뱃살에 기름이 차 비만으로, 나온 배를 어찌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허기를 면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하루 두 끼였다. 점심(點心)은 그야말로 좁쌀 한 줌이나 미역 몇 조각을 씹으며 ‘마음에 점’을 찍었다. 서민들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한 번 허리띠 끌러놓고 배 터지게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눈같이 하얀 순백의 쌀밥, 아들은 목이 메어 몇 술 뜨다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어머니는 숟가락을 다시 쥐어주며 말했다. “다 먹어야만 한다. 밥이 힘이다. 사는 게 다 밥이야, 밥 굶는 놈이 제일 불쌍하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밥 한 끼 먹여 보내는 일은 거룩했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설했다. 음식이 돼 준 생명들도 하늘의 일부인 만큼 음식을 먹는 것은 곧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 것이다. 하늘인 내가 다른 하늘을 먹어 생명을 얻는 것, 밥. 한국인 어른 셋 중 하나는 비만, 동산만큼 나온 배로 뒤뚱거린다. 살이 찌는 건 소비량보다 섭취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살 속엔 걸신(乞神)이 들어 있어 먹어도 먹어라, 먹어라 한다. 걸신에 걸려들면 수명을 단축하는 일밖엔 남는 게 없다. 폭식, 넘치는 만큼 백세에서 멀어진다. 먹방아, 그만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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