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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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시인/ 4·3조사연구원

금악리에 살고 있는 양창희씨는 1946년 생이다. 세 살 때, 아버지는 토벌대에게 잡혀간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여덟 살에, 어머니는 개가했다. 그녀는 큰아버지 집에서 살다가 열두 살 때 애기 없는 집에 양녀로 보내졌다. 큰아버지네 살림도 어려워서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양녀로 간 집안은 부유한 편이어서 당시는 굶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지만 초등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려고 보니 호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녀로 간 집안은 박씨였는데 고심 끝에 큰아버지 밑으로 호적을 올리면서 성씨는 바르게 되었지만 큰아버지의 딸로 되었다.

1948년 생인 오연순씨는 아버지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아버지라 불러본 적도 없다. 세상에 나온 지 며칠 만에 아버지가 토벌대에 붙잡혀 형무소에서 갔고 그곳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계셨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년 후에 재가했다. 어린 오연순은 어머니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외가에서 살았으나 초등학교 입학할 때서야 호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의 사촌 형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고 그때부터 삼촌이 아버지가 되었다.

1953년생 박삼문씨의 실제 나이는 올해 82세이다. 성씨도 박이 아닌 이씨다. 4·3으로 할머니와 부모님, 두 형과 누나, 모두 여섯 명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었다. 호적에 올라있지도 않았던 그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전남 목포에 있는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얼마 없어 한국전쟁이 났고 여기저기 피난 다니다가 박호배 씨를 만났다. 고아인 그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주면서 이삼문이 박삼문으로 바뀌게 되었고 실제보다 나이도 10년 이상이나 줄여졌다.

오연순, 양창희씨는 호적에 친아버지의 조카로 되어 아버지의 유족이 될 수 없었다. 박삼문씨도 엄연히 여섯 가족을 잃은 4·3피해 유족이지만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4·3 당시 사실혼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행방불명되어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거나, 실제 부모가 사망해서 친인척의 자식으로나 아예 다른 집안의 호적에 등재되어 가족관계가 뒤엉킨 경우 이를 바로잡으려면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을 거쳐 법률적으로 자식임을 인정받는 ‘인지청구의 소’를 청구하여야 한다. 유전자검사로도 가능하지만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도 하고 시신이 없는 경우는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청구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개정안이 올해 3월 초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7월부터 거주지 행정시와 동주민센터·읍면사무소 등에서 가족관계 정정 신청이 가능해진다. 신청대상자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의 사실조사를 거쳐 중앙위원회에서 의결하는 절차를 거치면 된다. 70년 이상 잘못된 가족관계 기록으로 고통받아 온 희생자와 유족들, 그들의 뒤틀린 가족관계가 하루빨리 복원돼서 그 동안의 마음의 상처와 응어리진 한을 풀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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