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감꽃 피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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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춘희 / 수필가

달이 춘흥을 잠재우지 못해 꽃을 흔들었음인가. 은밀히 화답이라도 하듯 감귤나무가 싸락눈이 내린 듯 유난히 하얗다. 한밤중 코끝에 전해오는 진한 밀감꽃 향기가 오래된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큰 파도가 휘몰아치듯 기억 저편에서 밀려오는 향기 속에 아버지가 서 계신다.

아버지는 평생 밀감나무를 가꾸는 농부셨다. 오월이면 아버지와 나는 밀감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동상이몽이었다. 아버지는 수확량을 예상한 뒤 한 해 살림살이를 설계하고, 나는 꽃향기에 취하고 싶어 오월을 기다렸다. 밀감꽃 피는 계절은 우리 부녀가 꽃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 오월에 망백의 아버지가 넘어지면서 넓적다리뼈를 다쳤다. 고령의 아버지가 엉덩관절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수술 후에도 지금 같은 모습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지 심란했다. 수술실로 이동하기 전 세 시간 남짓 동안 병실에는 아버지와 단둘이 남았다. 수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속절없이 아버지의 흰머리만 쓸어올리기를 반복했다. 말없이 가만히 계시던 아버지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마라.”

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신의 회한일지도 모르겠지만, 무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얼굴은 자꾸만 아래로 향했다. 자식들을 거두느라 한가로운 삶을 살아보지도 못한 아버지의 생을 알고 있기에 그 말의 의미가 아프게 다가왔다.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살아서 전에는 자주 들락거렸는데, 요즘은 나보다 남편이 찾아뵙는 날이 더 많았다. 지척에 계셔서 언제든 뵐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소홀했던 것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살이 빠진 볼에 틀니마저 빼내고 나니 더 야위고 길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 한 생을 건너며 만난 수많은 희로애락을 짊어졌던 어깨처럼 볼살이 힘없이 늘어졌다. 수술을 앞둔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실까. 그런데도 아버지의 손과 얼굴은 떨림도 없고 따뜻했다. 아직도 아버지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의연 하려고 애쓰는 사랑 앞에 목젖이 떨려왔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잠시라도 붙잡고 싶어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중환자실 입원 이틀째 되던 날,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가 심한 섬망 증세를 겪는다고 했다.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다가 보호자를 찾는다며 영상통화를 시켜주었다. 영상 속 아버지 행동이 몹시 낯설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

“집! 집에 갈거여!”

아버지는 같은 말만을 반복하셨다. 질곡의 삶 속에서 만난 수많은 기억 속에 아버지는 집을 말씀하고 계셨다. 열여섯 살에 만나 일흔여섯 해를 살며 밀감꽃을 함께 피워낸 아내가 있는 집을 찾고 계셨다. 아버지의 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밀감꽃 향기가 피어오르는 당신의 집으로의 귀향을 부르짖고 계셨다.

이웃집 개 짖는 소리도 멈춘 시골 친정집은 고요에 잠긴 듯 적막하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도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드셨는지 기척이 없다.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까치발로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내려선다. 백색으로 반짝이는 귤밭에는 가지마다 작은 종들을 달고 있다. 마치, 아버지의 귀향을 기원하듯 소리 없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흐른다. 늙은 삼나무 방풍림 위에 걸린 달빛도 조용히 기도하는 것 같다. 밀감꽃 향기 속으로 오월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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