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와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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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기말고사를 마친 대학 교정은 한산하다. 뜨거운 계절이 바야흐로 다가오지만 당장은 그렇다. 그러니 한산함을 말하는 것은 시절 모르는 ‘자발없는’ 이야기다. 대학은 우골탑이 되었건, 상아탑이 되었건, 뜨거워야 한다. 계절학기로 강의 수가 줄어들었대도 그래야 하고, 실제 그렇다. 한 학기 ‘봉사’와 ‘교육’에 매진해왔던 행정실, 연구실은 이 틈에 군불을 땐다. 9월에 새로 시작할 재정지원사업 계획서 수합과 검토, 종강을 기다려 앞다투어 개최되는 학술대회 참여 준비와 연구로 열대야를 하얗게 지새울 것이기 때문이다.

보강과 성적처리, 학술대회 준비로 여념이 없었던 지난 6월 초입 수요일 저녁에 지인이 연락해왔다. 퇴근길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인터뷰를 전하는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소위 빈대 10마리를 데리고 서울 가는 것보다 교수님 10명 데리고 서울 가는 게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설화(舌禍)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지인을 달래느라, “설마, 실언(失言)이겠지요. 개미 세 마리 줄 세우는 것보다 교수님 셋 줄 세우는 게 더 어렵다는 농담은 예전에도 있었으니까요.”라는 말로 애써 얼버무렸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뜻으로 실인(失人)이라고 한다.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을 하면 ‘말을 잃어버린다’는 뜻으로 실언이라고 한다. 말도, 사람도 잃으면 ‘혀가 부른 재앙’이라는 뜻에서 설화라고 한다. 성적처리를 끝내고 검색해보니 “모든 교수님들이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철학, 고유한 학문적 특성”이 있어서 뜻을 모으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같은 이유로 자신을 ‘신이 아테네에 보낸 등에’로 자처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퍽 안심이다.

에델 릴리안 보이니치(Ethel Lilian Voynich)는 1897년 <개드플라이(The Gadfly, 등에)>를 발표했다. 작품 배경은 통일운동(Risorgi-mento)이 한창이던 1830년대 이탈리아이다. 고해신부에게 했던 고백이 누설되면서 동료와 정부로부터 동시에 버림받은 주인공 아서(Arthur)는 자살로 위장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 온갖 역경을 겪고 13년이 지나 이탈리아에 돌아와 풍자 팸플릿을 쓰면서 ‘개드 플라이’라는 필명을 쓴다. 피를 빨아 배 채우는 빈대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등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비극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1955년 구소련에서 영화화되었다. 배경음악 가운데 하나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의 독주 클라리넷 버전 “Romance from the Gadfly”가 한산한 대학 교정, 그러나 뜨거운 연구실에 흐른다. 인류가 꿈꿔온 세상은 ‘같기만 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면서 조화를 이루는(和而不同)’ 대동사회다. 그러니 “21세기 학생을 19세기 방식으로 교육”한다는 “20세기 교수”로 희화되도 좋다. 비극으로 끝난대도, 설화가 끊이지 않는 건 등에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니까 말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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