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까미노를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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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윤 수필가

아내가 걷고 싶어 하던 길을 걷는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앞서간 아내를 기리며 걷는 길이다. 마지막 순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며 2, 30여km를 걷는 훈련을 했다. 한라생태 숲길과 절물휴양림을 걷고, 비 오는 날에도 사려니숲길 걷기를 거듭했다.

나의 까미노(Camino, 길)는 프랑스 길 800km 중, 스페인의 사리아를 출발하여 ‘산티아고’ 유해가 안장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대성당까지 120km이다.

첫날 프라자 마이오르시의회 사무소에서 ‘확인증’에 도장을 받고, ‘브엔 까미노’(좋은 순례길 되세요)를 외치며 첫걸음을 밟는다. 아내 체취가 묻은 배낭에 가리비를 매달고 아내가 사용하던 스틱에 몸을 의지한다. 하늘로 곧게 뻗은 유칼립투스, 자작나무들의 행렬을 따라 좁은 길과 넓은 길, 자갈길과 황톳길,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걷는다. 길가에 핀 노란 애니시다와 장미꽃 냄새, 흙 내음을 맡고, 때론 개울물가에서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간다.

얼굴을 태울 듯 햇볕이 따갑다. 가파른 언덕을 얼마쯤 걸었을까. 홀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소낙비가 퍼붓는다. 보라색 아내 비옷을 꺼내 걸치고 언덕배기를 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들판 너머에 무지개가 펼쳐진다. 순간 “하늘에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이 뛰노라/ (…)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시구가 절로 나온다.

아내를 그리며 걷고 걷는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떠올라 심연을 흔든다. 이웃의 아픔을 들으라는 게 아닌가. 딸을 먼저 보내고 참척의 슬픔에 눌린 어머니, 한 달에 부모님 장례를 모시고 반쪽 인생은 산다는 간호사, 생을 마감하려는 듯 뼈만 남은 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여인, 저는 다리로 비탈을 올라가는 노인 등…. 상한 심령으로 함께 걷노라니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걷는 날. 발에 물집이 터지고 감기 기운 탓인지 몸이 무겁다. 스틱에 몸을 실어 걷노라니, 삼 년 전 J대학병원에서 아내를 휠체어 태워 밀며 부르던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를 힘주리니’ 찬송이 뒤에서 들려오는 듯. 페드로우소 중간 지점인 ‘몬테 도 고소’로 향한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아득히 보이는 대성당의 첨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곳이다.

순례의 절정인 마지막 날, 산티아고 대성당의 향로미사 시간이다. 앞선 순례자들로 앉을 자리가 없어 성당 안 기둥에 몸을 기대섰다. 12시 정각 종이 울리고 수녀들의 성가로 미사가 시작된다. 신부님이 도착한 순례자를 나라별로 알리고 성찬식을 마치자, 자색 사제복을 입은 요원들이 제대 앞으로 나온다. 제단 맞은편에 매달린 세 개의 밧줄로 묶은 크기 1.5m, 무게 62kg의 보따푸메이로(대형 향로)를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당기더니, 드디어 향로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며 사방으로 향을 뿜어낸다. 사죄와 용서, 감격의 순간이다. 얼마나 아파하며 고뇌하며 힘겨워하며 걸어온 까미노인가. “언젠가 영혼의 평안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라던 아내의 한마디를 품고 걸은 까미노.

집에 도착한 늦은 밤, 아내 영정을 마주한다. 배낭에 달았던 가리비를 영정에 걸고 확인증을 올렸다. 그리고 촛대의 보라색 초에 불을 붙이자 대형 향로에서 뿜어내는 향이 거실에 퍼지며, 아내 음성이 들리는 듯. “여보, 고마워. 나 당신 손 잡고 순례길을 걸었잖아.” 브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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