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너라고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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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여름꽃이라 그런가. 수국이 여태 한창이다. 앞집 담벼락 사이에도, 올레길 바위 옆도, 저쪽 카페 정원 앞마당에도 이울고 피느라 꽃은 색색이 곱다. 어디에서 수국 축제를 했다느니, 거기보다 저기 수국이 더 낫다, 그 공원에 핀 꽃이 어찌나 곱던지 그곳 수국 따를 만한 곳은 없겠더라는 등. 말에 말이 이어졌다. 꽃의 크기며 색깔만큼이나 꽃 핀 모양을 눈이 읽고 가볍게 건드려 놓은 감성 때문일까. 각각의 느낌을 쏟아내며 자평하느라 입이 바빴다. 하기야 어느 꽃인들 곱지 않은 게 있을까만.

얼마 전 지인네 놀러 갔다가 그곳 정원에 무더기로 핀 수국 중, 싱싱한 것을 색깔별로 잘라 얻어왔다. 무리 지어 피었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와 꽃의 크기에 맞게 생수병을 잘라서 꽂고, 호리병처럼 생긴 것도 찾아 꽂았다. 거실, 현관, 방 등 공간이란 공간마다 꽃병을 하나씩 갖다 놓았다. 갑자기 집안은 색색이 꽃으로 화사하다.

꽃에 붙여지는 꽃말은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인지 대체로 좋은 뜻의 꽃말들이 많다. 수국의 꽃말을 살펴봤더니 꽃 색깔에 따라 좋은 뜻에서, 그 반대까지 범위가 넓었다. 토양에 따라, 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꽃 색깔도 변한다더니 그에 따른 꽃말도 색깔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분홍색 수국은 사랑이나 진실한 감정을, 흰 수국은 순결, 우아함, 풍요를, 파란 수국은 거절, 변덕 등. 이렇게 고운 꽃에 꽃말은 좋은 뜻도, 또 전혀 다른 의미도 품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숨죽인 참꽃에 비해 산수국 헛꽃의 강렬한 색상이며 꽃의 크기가 마음을 당긴다.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것에는, 소소해도 많은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꽃을 보며 감성이 작동하듯, 한 점의 그림에서 깊숙이 잠재워 둔 의미들을 흔들어 깨울 때도 있다. 무심코 켜 놓은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에서 잊었던 추억을 소환할 때도 있고, 우연히 본 낯선 사람의 아주 작은 몸동작에서 전해지는 가식 없는 귀염성도 마음을 당긴다.

그뿐인가. 젊은 부부가 데리고 나온 아기가 풀밭 촉감이 좋던지 나풀거리듯 돌돌 뛸 때, 조마조마하면서도 넉넉함을 풀어놓게도 한다. 별생각 없이 마주한 한 줄의 글에서 힘든 마음을 위로받기도 하고, 한 장의 사진은 삶의 얼개에서 하나의 화소가 되어 가족, 친구들 간의 낡은 기억을 더듬으며 잊었던 관계를 다시 챙기게도 한다.

또, 기호에 맞는 절대 비율의 차 한 잔에서 평온을 찾을 때도 있고, 가끔은 땡볕에 서 있는 음영 좋은 가로수 그늘도 매한가지다. 거기에 자잘한 이파리를 농처럼 슬쩍슬쩍 건드리는 미풍이 건네는 청량감은 마음을 잔잔하게 흔들어 놓기도 한다.

한 초등학교 벽면에서 ‘꽃이 너라고 생각하니 세상에 안 예쁜 꽃이 없다’는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보는 순간 아이들 모두가 꽃처럼 곱게 다가와 마음 흔들린다. 아까 만발하게 피워내던 이야기꽃도 수국만큼이나 곱지 않던가. 곳곳에 절기가 주는 자연과의 조우, 사람과의 관계,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더없이 반갑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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