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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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좋은 죽음(?)을 위해 살아간다면 아이러니한 역설일까? 아니 적어도 속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종착지인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인생사일진대 잘살고 있다면 어느 정도 좋은 죽음으로 가는 논리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생뚱맞게 서두에 웬 죽음 이야기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아내는 절친이었던 친구의 주검과 나에게 형부라 부르며 살갑게 대해주던 동생 친구의 주검을 마주했었기에 하는 말이다.

여름이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는 이즈음 그 생죽음들을 대하며 난 다시 내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어찌하랴, 떨어지는 게 자연의 순리인 걸 알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그래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마지막 숨으로 속삭일 수 있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내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마지막을 지켜줄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밤 내 죽음을 떠올리며 나의 마지막을 지켜줄 사람이 내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두려움이 서재를 가득 채운다.

최근에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도서관에 다녀왔다.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가장 가까이 대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줬던 간호사 출신 저자가 쓴 생명윤리 이야기 김형숙의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책이다. 현대인 대부분은 최첨단 의료 장비에 둘러싸여 생을 마감한다며 좋은 죽음은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아울러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떤 의료환경이어야 하는가를 암시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어 생명윤리와 좋은 죽음에 관심이 있다면 이 여름 꼭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간호사가 엄마인 줄 알고 매달리는 뇌종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를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회한(悔恨),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숨이 가쁜 엄마 환자에게 잠시 기도삽관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지 못한 회한 등…. 희망이 없어도 절차를 따라야 하는 의료시스템에서 자신이 저지른 가슴 치는 아쉬움이 책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난 죽음의 순간에도 계속되는 표준화된 의료시스템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기도삽관이나 인공호흡기 등을 꺼져가는 생명에게 달아주는 것은 조물주(造物主)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인공호흡기를 해도 죽음은 곧 찾아오기에 연명 의료행위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정하다고 의료진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케어 같은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그렇다.

이제 우리도 생명윤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죽음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것도 모자라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좀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사이에도 우리 이웃들은 하나둘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고독하지 않게 가족 곁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고인이 잠깐 퇴원한 날 커피를 마시며 아픔을 함께했던 아내의 절친은 마지막 순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며느리에게 전했다니 가슴이 아프다. 만나면 ‘형부’ 하면서 살갑게 나를 대해줬던 고인도 마찬가지다.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맞이하는 죽음의 공포를 세인(世人)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 밤도 유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단장(斷腸)의 아픔을 겪고 있으리라.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하시길 바라면서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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