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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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주 수필가

주말 아침이다. 놀이터에서 들려 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왁자하다. 구름이라도 잡고 싶은 듯 힘껏 뛰어오르거나 달리며 고함을 지른다. 주변에 있던 나무들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초록 이파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입원해 계시는 시어머니를 위한 일로 하루를 보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야만 하는데 오늘 그 과정을 밟은 것이다. 나름 신경이 쓰였는지 고단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입장에 서보면 잠시의 고단함이야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자신에게 처한 문제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큰 절망감에 빠진다고 한다. 다시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태, 시어머니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듯 통화할 때마다 신음 섞인 한숨을 쏟아낸다.

밤사이 통증을 끌어안고 신음하다가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일지.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솟구쳐오르거나 굽이치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지는 파도처럼, 우리의 육신도 노병老病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괴로워하다가 조용히 스러지고 만다.

세상에 태어나 다시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누구에게는 짧고 또 누구에게는 길다. 삶이 즐거우면 세월이 화살처럼 빠를 것이고 고통스러우면 하루가 십 년이다.

언젠가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아프리카 출신의 ‘무사’라는 인물이 소개됐다. 그는 어릴 때 암에 걸려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됐는데 달라진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로 춤을 춘다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 무대에 섰다고 한다. 양손에 지팡이를 잡고 무대를 누비는데 절도 있으면서도 날렵한 모습이 나비가 춤을 추듯 가벼워 보였다. 몰입의 눈빛은 경지에 오른 모습이었고 춤과 하나 된 영혼은 ‘오직 이 순간뿐’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시어머니는 침대에 누워계시는 게 일상이다. 가족들은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체념한 듯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라 생각하면 매 순간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게 된다. 이제라도 의사에게 닳아 없어진 연골을 넣어 달라고 매달려볼까. 고령의 경우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에 수술을 권하지도 않겠지만, 희망 없는 병실에 누워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으라는 건 고문 중에도 극한 고문이 아닌가 싶다.

통통 튀는 아이들의 표정이 아침 햇살처럼 맑다. 골 깊은 시어머니의 얼굴을 햇살 같은 아이들 얼굴 위로 포개어 본다. 시어머니도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아침에 핀 꽃이 저녁에 지는 것처럼 피어나는 꽃과 시들어가는 꽃 모두가 영원하지 않다. 태어나면 꽃으로 환영하고 떠날 때는 꽃으로 장식하니 우리는 꽃을 닮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험난한 삶의 바다에서 나다운 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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