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나무에 그리움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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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수필가

어릴 적 살던 집은 비산비야의 너른 땅이었다. 축구장 네댓 개 넓이의 론 그라운드. 쑥과 벌금다지를 시작으로 봄이 제자리를 잡으면 대지는 온통 초록의 물결이었다. 바람이 스칠 적마다 초록물살이 일렁였다. 나비떼들의 아름다운 곡선 무용이 장관이었다. 사금파리만한 내 가슴은 그렇게 채워졌다.

엄한 아버지의 차돌 같은 소리가 귓속에 파고들 때마다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호밋자루만 물로 씻을 뿐 눈길도 주지 않았다. 결코 살갑지않았던 어머니, 그녀의 함지박만한 가슴에도 초록물살이 들어있었을까?

그런데 유독 눈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바로 푸른 소나무 한 그루다. 터줏대감인 양, 소나무는 대지를 굽어보며 자잘한 풀들을 지켜봤다. 피 좋은 소나무는 어지간한 바람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곁을 주지 않는 아버지 같았다. 어머니는 그 너른 대지에 한 점이 되어 초원을 무릎걸음으로 누비셨다. 먼발치에서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나면 어머니는 후다닥 호미를 놓고 부리나케 밥상을 차려야 했다. 아버지의 불같은 성화가 어머니의 발길을 성급하게 끌고 갔다. 허둥거리는 치마에 손을 닦으며 대꾸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그때마다 먼 데서 뻐꾸기 소리가 혼자 걸어왔다. 당신의 소리를 뻐꾸기가 대신이라도 하는 양, 그저 뻐꾸기가 우는 데를 한참이나 바라보시곤 했다.

막내였던 나는 언니들을 핑계 삼아 언제나 외톨이로 지냈다. 어지간히 속이 찬 언니들은 어머니의 손을 대신하기도 했지만 나는 뻐꾸기 소리처럼 늘 혼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봄은 참 잔인했다. 해종일 풀을 메고 씨를 뿌리는 어머니가 참 자닝하게 보였다. 하지만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속마음과 달리 엇뚜루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그 누구도 붙잡지 못하는 바람 한 올이었다. 여기저기에 눈을 주다가 그것도 재미가 없어지면 방으로 들어와 발딱 드러누워 책을 보았다. 펼친 책의 여백은 무심결에 끄적거리는 글자들로 채워졌다. 문장으로 꿰지도 못할 낱말들이 우줄우줄 기어 나왔다. 써놓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이나 구보다 봤다. 아마도 숨은 말들이 펜이라는 출구로 쏟아져나온 듯싶었다. 그러다가 울컥 목이 멨다. 돌아누워 누렇게 빛바랜 벽지를 보았다. 사방 연속 꽃무늬, 꽃들은 둥글게 다른 꽃들과 어깨를 걸고 하나의 무늬를 이루었다. 사금파리만한 가슴에서 뭔가 모를 그리움이 팍 피어났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들, 여린 풀들과 소나무, 바람과 뻐꾸기……. 이런 것들이 저 벽지의 그림처럼 꽃무늬를 이루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뻐꾸기소리가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 모습이 슬펐다. 볼 수도 없는 소리를 눈으로 더듬었다. 창호지 문에 걸어놓은 작은 유리창으로 소나무가 들어왔다, 소나무에 뻐꾸기소리가 얹혀졌다.

반백 년이 훌쩍 지난 그 시절, 푸른 소나무와 뻐꾸기소리가 그리워 어느 봄날 그 초록물살을 찾았다. 초록물살 대신 매캐한 황톳빛 바람이 쏘다녔다. 푸른 소나무는 잘려 나가 흔적도 없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주던 뻐꾸기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리워 한참 동안 마음의 스크린에 어릴 적을 띄웠다. 푸른 소나무에 뻐꾸기소리가 앉아 있는 빛바랜 영상에서 뻐꾹 뻐꾹 소리가 났다. 왠지 그 소리가 푸른 소나무를 보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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