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바라보는 3만명의 중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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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미 문화부장

83세의 현기영 작가가 최근 장편소설 ‘제주도우다’를 펴냈다.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부터 4·3 전후를 포함해 제주의 근현대사를 촘촘히 아우르는 내용으로 총 3권으로 제작됐다.

현 작가는 지난 8일 제주문학관 대강당에서 열린 발간 기념 북토크에서 장편소설 집필만큼은 젊은 작가가 나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루고 있었고, 사실 더는 4·3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결심도 있었지만, 어느 날 4·3 영령이 꿈에 나와 자신을 두 번이나 고문하는 악몽을 꾸면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늙은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4·3을 붙들고 있다”는 현 작가는 그동안의 중단편소설이 4·3의 수난, 즉 희생담론을 다뤘다면 ‘제주도우다’에서만큼은 항쟁의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전했다.

문학은 사실의 나열만이 아니다. 또한, 사건의 진실 역시 사실의 전체라고 할 수 없다.

현 작가는 “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3만 명의 중량감은 3만 건의 사건”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사실 3만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고 부피 또한 거대해서 마치 어두운 방 속에서 커다란 코끼리의 다리를 더듬는 것처럼 압도적인 부피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세 권을 써 내려갔지만 거대한 4·3이라는 역사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그 사건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고, 4·3 희생자 3만 명이 4·3이라는 전체 사건의 등장인물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현 작가는 비로소 4·3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신이 내린 결론은 4·3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상부상조하면서 함께 잘살아 보자’는 항쟁, 즉 공동체주의를 향한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자신이 탐색한 것을 함께 탐색하며 각자의 관점에서 항쟁의 원인을 찾아보길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제주도우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손녀가 등장한다. 주인공이 참사를 겪을 당시 16세였으니 70여 년을 ‘생존희생자’로 살아온 셈이었다. 여기서 주인공의 손녀는 4·3을 겪지 않은 세대를 대표한다.

현 작가는 ‘기억이 대를 이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 미체험 세대의 역할을 강조했다.

희생자 3만이라는 숫자가 가진 대를 이은 기억의 힘이 다져져야 4·3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고, 위로하고,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 관점에서 제주4·3은 제주인의 삶에서 피와 살로 분리될 수 있는 객체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끊임없이 탐구해왔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3만의 희생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제주어로 노래하는 제라진소년소녀합창단이 오는 22일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에서 제주4·3 75주년 특별기획공연 ‘기억해요 4월 3일’을 마련한다.

‘세대를 이어가는 제주4·3’이라는 부제에는 4·3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어린이들이 4·3의 역사적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이제는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제주의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를 글로 쓰고 싶다는 현 작가의 바람처럼 아이들의 노래가 슬픔이 희망으로 승화되는 단초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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