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라졌다
노인들이 사라졌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권일 남원서부파크골프 이사/ 삼성여고 이사장

긴긴 여름날. 집구석, 아니면 경로당이나 정자나무 그늘에서 소일(消日)하던 동네 노인들. 요즘 들어 부쩍 보기 힘들어졌다.

새벽 댓바람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집 가까운 파크골프장들로 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뒷방 늙은이들이 아니다. 유치원 자리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노치원‘(요즘 양로원은, ‘노인 유치원’이라 불린다.) 원생들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늘그막에 한껏 멋 내고, 삼삼오오 찬란했던 젊은 날들을 소환한다. 시나브로 무너지는 노구(老驅)에, 푸른 들판 싱그런 에너지 충전하는 ‘힐링’은 덤이다. 나무골프채, 공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용료 공짜, 경기규칙도 어렵지 않다. 산보하듯이 필드 걸으며, 공을 쳐서 홀 컵에 넣는다. 가끔 홀인원 환호가 울려퍼지는 날이면, 의기양양 당사자가 ‘쏘는’ 아이스크림이나 수박이 한 보따리다.

남녀불문 즐거움과 건강을 만끽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이다 보니, 노인들 천국 따로 없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일곱 개 골프장이 있는데, 서두르지 않으면 몰려드는 동호인들에 치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게다가 육지에서 오는 파크골프 관광객들까지 더해지다 보니, 언제나 만원사례일 수밖에. 다행히 제주도에서, 올해 대여섯 개의 골프장을 증설할 예정이라니, 라운딩에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일반 골프장을 축소하여 집 근처 공원 안으로 들여놓은 파크골프는, 일본의 홋가이도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인의 축소지향은 가히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방안 오디오를 ‘워크맨’으로 축소하여 휴대하고, 밥상을 줄여 ‘밴또’에 담는다. 분재로 가꾸어 거실에서 자연을 완상(玩賞)하는가 하면, 따뜻한 아랫목도 ‘코타츠’ 탁자 아래로 모아, 오순도순 둘러앉아 추위를 녹인다.

‘하이쿠’도, 축소지향의 문학이다. 5.7.5. 3구(句), 총 열일곱 글자로 시인의 정서를 축약한다. ‘고요함이여/바위에 스며드는/매미의 소리/. 애송(愛誦)하는 마쓰오 바쇼의 ‘매미’ 전문(全文)이다.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골프는 서민들 특히 노인들에게는 맛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드넓은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나이스 샷‘을 외치는 골퍼들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이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생(生)에서는, 한량 같은 그들의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따라갈 수 없기에, 상대적 무력감과 소외감에 맥이 풀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파크골프가 있어 살맛이 난다. 돈과 시간 걱정없이, 언감생심 골프 즐기는 날이 올 줄이야. 비록 일반 골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같이 늙어가는 이웃사촌들과 동네에서 라운딩하며, 인생의 황혼을 붉게 물들인다. 뒷방 늙은이의 외로움과 우울감, 고단했던 삶의 낙인인 관절통 날려버리며, 백세 언덕 향해 골프채 들고 힘찬 걸음 옮긴다. 나라에서 파크골프장 더 만들고. 잘 가꾸어주었으면 참 좋겠다. 노인들이 행복한 실버 복지국가. 뭐 별거 없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