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 숲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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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수필가

빛이 닿는 자리마다 초록이 피어난다. 숲과 바다와 구름이 액자에 담긴 듯 고요하다. 정오의 팡아만(灣)은 울트라마린블루이다. 수면 위로 하얗게 빛이 끓어오른다. 수만 마리 나비가 날개를 파닥이듯.

맹그로브나무는 소금기 가득한 해안 부근이나 염성 습지에서 자란다. 진흙이나 바닷물 바깥쪽으로 뿌리를 뻗어 부족한 산소를 흡수한다. 툭툭 불거져 근육질 같은 수십 개의 뿌리는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면서 자연 방파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숲이 천천히 내 안으로 들어온다.

젊은 날 아버지는 한 그루 맹그로브나무였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서 거친 삶을 헤쳐나가야 했다. 기울어져 가는 가세에도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대도시 공업중학교로 보냈다. 천성이 순한 당신은 불량배들의 꼬임에 빠졌고 그것은 평생 아버지의 발목을 잡았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흉년이 잦은 고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맹그로브는 열매가 달린 채로 뿌리와 잎이 나는 태생종자다. 어느 정도 자라 낙과한 열매는 해류를 타고 펄에 닿아 바닷속 십 미터까지 뿌리를 내린다. 해수(海水)와 펄밭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생존본능이다. 그래서일까. 바깥으로 둥글게 휘어진 수많은 뿌리는 팔을 벌려 나무를 감싸 안은 것처럼 보인다.

어렵사리 들어간 사방사업소 임시직에서 또다시 밀려난 아버지는 좁은 마당 한켠에 장갑공장을 차렸다. 봉제공 언니 둘과 늦은 밤까지 기계를 돌렸다. 대못이 박힌 나무판에 장갑을 꽂아 당기는 다림질을 마치면 자전거 짐칸에 높다랗게 쌓아 배달 나갔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은 늘 적자에 시달렸고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도시 가장자리에서 또다시 인근 소읍으로 밀려났지만 기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수북하게 쌓인 재고품 여기저기에 가난이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요즘 친정에 들리면 아버지는 부쩍 사진첩을 꺼내신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흑백사진을 유심히 본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헐렁한 꽃무늬 치마를 입은 야윈 엄마 곁에서 나와 남동생이 어정쩡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늦여름의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 갓길이었다. 사내끼를 든 아버지와 봇도랑으로 미꾸라지 잡으러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새삼 애틋하다.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중미 엘살바도르의 맹그로브 숲에서 조개를 캐며 살아가는 어린 남매 이야기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가난한 삶을 그려냈지만 숲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존터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산살처럼 둥글게 펼쳐진 맹그로브 뿌리는 물고기들의 안전한 산란지다. 이끼나 굴 등을 감싸주어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가 되어 준다.

온갖 일자리를 거쳐 아버지가 정착한 곳은 고향 냇가 자갈밭이었다. 어깨너머로 익혔던 사방기술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새벽에 나서면 이슥해서야 돌아왔다. 자갈을 골라내고 물길을 트며 다랑이 밭을 일구었다. 비 오는 날 외엔 쉬지 않고 열심인 덕분에 조금씩 옥토로 변해갔다. 수년이 지난 후 갖가지 나무들로 무성한 농원이 되었을 땐 궁핍한 살림살이도 조금 나아졌다.

구순의 아버지는 얼마 전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다. 처음엔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보조기구에 의지해 조금씩 걷게 되었다. 나무뿌리 같이 든든했던 다리는 몇 달 사이에 많이 가늘어졌다. 몇 발자국 걸음도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경운기에 잘려나간 손가락 세 개는 닳아서 뭉툭해졌다. 맹그로브나무처럼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려 끈질기게 이어온 삶이 그 손끝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팡아만(灣)을 돌아 나온 유람선이 하얀 꼬리를 끌고 다시 숲을 지난다. 초록의 우듬지들이 햇볕을 받아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무수하게 뻗은 뿌리들이 아버지의 팔 같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너털웃음이 맹그로브 숲을 잠시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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