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스토리텔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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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종이는 불쏘시개가 아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드넓은 난장이다.

백지 앞에 앉아 보라. 얼마나 광활(廣闊)한가. 백지처럼 탁 트인 지평은 없다. 고운 햇살에 밝아오는 동, 맹렬했던 하루를 마감하며 서슴지 않고 밤으로 진입하는 서, 산을 넘어 비를 몰고 오는 마파람의 근원인 남, 하늬를 앞세워 정신 번쩍 들라 날을 들이대는 북, 종이는 사방으로 열려 있어 우리를 홀리고 꺼당긴다. 백지에 보석보다 고귀한 사색의 낱알들을 빼곡히 쌓는 사람들을 이른바 작가라 한다. 꽃 앞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헌사로 읊조리고도 고뇌의 시간들을 지치게 노래하는 자가 시인이다.

나는 종이에 목말랐던 세대다. 몇 장짜리 모눈종이, 학습장은 너무 얇았고 거칠어 조악했다. 가을운동회 날 달리기에 1,2,3등해야 각각 3,2,1권을 상 탔는데, 뚜껑 위에 큼직이 찍혀 있던 ‘賞’ 자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번듯하다. 달리기를 못해 학습장을 상으로 받았던 물건찾기, 일진 좋았던 그날의 물건, ‘고무신’도 지워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시절의 종이는 백로지(갱지). 전지를 8등분해 8절지, 더 나눠 9절지, 아이들 학습장은 더 작게 줄인 크기였다. 나는 전지를 사다 8등분하고 접어 썼다. 하지만 펜으로 잉크를 찍어 쓰면 뒤로 피는 바람에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야무지지 못해 스며 드는 파괴적인 잉크에 불수용, 무대책이었다. 백로지는 ‘흰 이슬’이란 뜻인데 이름 값을 못했던 아쉬움이 컸다. 더 좋은 종이를 꿈꾸며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절에 모조지가 있었다. 반질반질 빛나고 매끄러운 고급지였다. 무엇보다 잉크가 뒷면으로 번지지 않아 다들 좋아했지만, 고급이라 값이 비싸 8절지 한 장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중학생 때 교내 그리기 대회에 나가 능금을 그렸던 일이 생각난다. 눈부시게 하얀 모조 도화지에 빨간 크레온을 손에 힘주어 칠했는데, 내게 2등의 기쁨을 선사했던 그 종이. 나이 들면서 이름을 왜 ‘남을 모방해 만든다’고 모조(模造)라 했는지 쉬이 수긍할 수 없었다.

마분지가 있었다. 짚을 원료로 한 투박한 종이, 이름에 마분(馬糞)을 내걸었으니 속되게 ‘똥종이’라 하던 것. 갱지가 바닥나면 썼는데, 학교에서 시험 때 이걸로 프린트했다가 글자가 안 보여 교사가 교실을 돌며 읽어 줘야 했던 촌극을 빚기까지 했다. 시험 때마다 매번.

요즘은 종이도 풍요로운 시대에 맞게 A4 사무용지다. 가로 210㎜, 세로 297㎜.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표준 규격에 따른 것. 복사, 프린터 용지 크기의 표준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직장에서 떠나와 종이도 귀해졌다. 수필은 자판으로, 시는 백지에 초고하는 습관이다. 시가 좋든 궂든 백지를 받아 앉아야 한다.

마침 종이가 다 돼 문구점을 다녀올까 하는 참인데, 출판사에서 교정지가 왔다. 시집과 수필집을 묶은 책이라 624쪽. 어서 교정을 끝내 보내고 나면, 재활용지는 내 독차지다. 624장의 백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 감쪽같이 백지다. 저것들을 앞에 놓고 동서남북으로 상상의 나래를 나부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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