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바지를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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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재래시장 골목 상점 앞이다. 주렁주렁 내 걸린 몸뻬로 불리는 꽃무늬 바지에 시선이 꽂혔다. 가격도 저렴하고 일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샀다. 품이 넉넉하고 가벼워 내 취향으론 그만이다. 만 원의 가성비가 매우 흡족하다.

바지는 일상의 요긴한 옷이 됐다. 노상 입고 뒹굴어도 구겨지거나 흔적이 생기지 않는다. 사는 게 아무리 고달파도 이렇게 구김이 남지 않는 삶이라면 좋으련만. 옷은 몸의 주인이 아니기에 옷 속에 몸을 가둘 수는 없다. 살다 보면 허리 휠 일이 허다한데 옷까지 짐으로 얹힐 수는 없다.

몸뻬는 중일전쟁 발발 시, 일본에서 처음으로 들어오면서 여성들이 일할 때 입었다고 한다. 국립국어원에선 일바지로 불릴 것을 권장하지만, 이미 일상에서 몸뻬로 익숙해진 옷이다. 요즈음은 남정네들도 농사일할 때 작업복으로 스스럼없이 이용할 만큼 인기가 좋다. 여성 전용처럼 입던 옷인데, 색이 화려한 꽃무늬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배낭을 메고 꽃바지를 입은 채, 해안도로 올레를 걷는 젊은이의 모습이 건강하고 유쾌해 보였다.

타지에 가면 거리 풍경을 유심히 보게 된다. 요즈음 유행하는 패션의 흐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따라가지는 못해도 눈요깃감으로 충분한 볼거리도 된다. 날씨에 개의치 않고 추워도 여름 티셔츠를, 한겨울처럼 두툼한 점퍼를 걸친 사람이며 각양각색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자기의 몸 상태에 따라 입는 것이 옷의 개념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옷을 입는 경향이 달라졌다. 실용적이고 편리한 쪽으로 선택한다. 예를 갖춰야 할 장소에도 예전처럼 정장보다, 예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차림이면 무관하게 여긴다.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개성을 따르는 것 같다. 거리를 간편한 차림으로 활보하는 모습은 한결 활기차 보인다. 그만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다. 편한 옷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나이 듦일까. 내 늙음이 당당하고 누추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편하게 살려면, 매사에 느긋하게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일에 옳고 그름으로 잣대를 들이대며 까탈스럽게 살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삶을 지향하고 싶다.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게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이 토대가 될 것 같다. 부담을 내려놓고 선택한 기쁨, 젊은 시절은 싫어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내키지 않는 일에 감정의 소비가 컸다.

장마가 잠시 주춤한 날, 해가 들어 화창한 오후다. 허리에 고무줄을 넣은 꽃무늬 바지를 입고 공원 숲길을 걷는다. 예전 같으면 이런 차림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초록 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은 숲을 헤집는 바람이 상쾌하고, 종아리에 감기는 꽃바지 감촉이 부드럽다.

나태의 변이 될 수 있겠지만, 가격이 저렴해도 편하면 내겐 최고의 옷이란 생각이다. 칙칙한 색보다 되도록 밝은색으로 입어 덩달아 기분을 띄우고 싶다. 앞으로의 내 삶이 꽃바지처럼 구김 없고 가볍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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