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까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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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칠석날엔 지상에 있는 까막까치들이 하늘로 올라 머리를 맞대고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다. 일 년에 한 번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게 해준다는 애틋한 전설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디. 아름답고 정겨운 전설이다. 까막까치가 은하수에 놓는 전설의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 일러 온다. 뜻 그대로 까마귀와 까치, 두 새의 합작품이다. 이런 유래로라면 두 새는 ‘까막까치’라 불릴 만큼 친숙했던 것 같다. 아무런 연유 없이 두 새를 나란히 세워 다리 이름까지 지었을까.

한데 전설 속의 두 새와는 달리 까마귀와 까치는 실제 친숙하지 않다. 우호적이기는커녕 그들은 단연코 적대 관계다. 바람 센 제주에는 까치가 살지 않았는데, 근래에 몇 마리 방사하더니, 환경에 적응 속도가 빠른 데다 독하고 약삭빨라 마을에 살던 텃새 까마귀를 산으로 내쫓았다는 설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그게 사실인가. 덩치 크고 영리한 까마귀가 텃세는못할망정 저보다 작고 더군다나 외래조에게 몰려 산속에 갇혔다니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새가 공중에서 싸움을 벌이는데 까마귀가 까치에게 일방적으로 몰리더라는 목격담도 입에 오르내려 까치의 우세를 거드는 바람에 그런가 보다고 수용하는 편이었다.

지난봄, 아파트 입구에 줄 서 있는 워싱톤야자수 꼭대기 두세 군데에 까치들이 둥지를 틀더니 새끼를 쳤다. 몇 쌍의 까치 부부들이 먹잇감을 물어오느라 분주히 들고 나면서 아파트 숲을 흔들었다. 차르르착착, 파찰음 까치 울음소리가 귀에 거슬렸지만, 한편 새끼를 키우는 내리사랑이 하도 감동적이라 혀를 내둘렀다.

한데 여름으로 가는 길목, 갑자기 아파트 숲이 전운으로 뒤덮였지 않은가. 까치 부부가 까마귀 한 마리를 맹렬히 추격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차르르착착, 발악하는 까치 소리가 공중을 찢어놓았다. 싸움은 처절했다. 까치에게 쫓긴 까마귀가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 길 건너 전신주 끝에 앉는다, 혼쭐이 났는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춘 까마귀. 제 새끼를 노린 내습자를 내쫓으면서 숲은 다시 평온을 되찾아 갔다.

공중에서 벌어진 쫓고 쫓기는 싸움은 네다섯 번으로 이어졌다. 매번 까마귀가 수세에 몰리면서 쫓겨나곤 했다. 7월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그 며칠 사이, 보지 못한 대혈전이라도 벌어졌던 걸까. 덩치 큰 까마귀 서너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까치둥지를 활개치며 들락거린다. 거침이 없다. 무혈입성으로 보였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디서 금세 나타날 것 같았지만, 그렇게 그악하던 까치들의 저항은 일체 없었다.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열흘쯤 지났을까. 까치가 수없이 날아들던 숲에 그들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까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에 태어난 새끼들은 이제 다 커 홀로서고 있을까. 또 하나, 몹시 궁금한 게 있다. 몇 달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그들, 더구나 자기 영역에 집착이 강한 그들인데, 혹여 와신상담(臥薪嘗膽) 영지 수복에 나서려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은 작전을 위한 탐색의 시간, 머지않아 이 아파트 숲에 대혈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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