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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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수필가.시인
양재봉
양재봉

조천읍도서관에서 서예 지도한 지 25년을 앞두었다. 그간 많은 사람이 거쳐 갔다. 올해도 ‘환경사랑서예전’을 앞두고 회원 모두가 습작에 땀을 흘린다. 그중에 총무를 자처해 맡은 B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수강생 중에서 제일 고령으로 나보다 열여섯 살 위다.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서예뿐만 아니라 문학동아리 회원, 합창단 회원, 피아노 수강, 어린이집에서 시니어 돌보미 봉사까지 활동이 왕성하다.

남편이 갑작스레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토요일마다 하는 서예 수업에 연속으로 세 번이나 빠졌다. 뒤늦게 남편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예 교실 동아리 회원들과 B의 집을 찾아갔다. 텃밭엔 온갖 푸성귀와 열매를 달아맨 유실수도 많다. 깔끔하게 가꾼 텃밭만 보아도 주인의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기척에 현관문을 열고 나온 몸집 자그마한 그, 반갑게 맞아주는 미소가 참 고운 사람, 산수를 넘긴 나이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걸음도 경쾌하다. 다행이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임종으로 이별의 아픔을 삭이고 있을 거란 생각에 모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장례식 때 알려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다고 조심스레 건넨 말에 활달한 그답지 않은 답을 들으니 모두 숙연해진다.

“하늘에서 언제 부를지 모르는 나이가 되어서 누구에게든 가능한 알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갚지 못할 형편이 되면 어쩌나 해서요.”

부의금 받으려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보았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셈하는 사람도 많다. 모두 부 선생님만 같았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혼자되어서 마음의 외로움을 조심하시라는 말에 남편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급속히 기력이 쇠하며 걸음도 힘들어졌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돌본다는 건 힘겨운 일이다.

평생 보호자가 되어준 남편에 대한 도리라 생각한다며 모든 일 뒤로하고 간병을 준비했다. 휠체어가 필요하겠다는 남편의 뜻에 따라 그것도 구입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간병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다. 간병을 위해 집 안을 정리하는데 병원에서 찾는다. 달려갔다. 심폐소생술을 거둔다.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가던 날 손이라도 잡고 보냈으면, 눈빛으로라도 소통했으면, 며칠만이라도 내 돌봄을 받다 갔으면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진 않았을 겁니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저 휠체어, 남편이 한 달 전에 입양해서 겨우 정 붙인 저 강아지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겁니다.”

홀로된 외로움보다 그렇게 가버린 배우자를 그리워하며 미안해하는 부 선생 눈시울이 붉어진다. 고인은 비록 망자가 되었지만, 외롭지 않겠다. 황혼이혼으로 헐뜯고 싸우는 삭막한 세상 아닌가, 저리 삶을 마무리할 수만 있어도 행복한 것 아닐까.

‘아름다운 이별이 가고나면, 다시 아름다운 만남을 빕니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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