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잎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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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정원 천변의 호박 한 덩이/ 햇살과 바람을 꾀어 웅크리었다.// 그리움 깊어/ 눈물에 갑옷 입혀 보듬어 안고/ 통곡할 내일을 기다렸더니// 무된서리 지나 눈밭도 쌓여 녹고/ 인연의 넝쿨 말라 어둠의 별빛까지 다 하였어도/ 변태(變態)의 꿈은 오지 않았다// 썩어 아무것도 되지 않아, 옳을,/ 늙은 갑각류여’

성봉수 시인의 ‘늙은 호박’이다. 

올챙이들은 뒷다리가 생기면서 개구리로 변태를 한다.

매미는 또 어떤가. 유충에서부터 변태를 거듭해 우화(羽化)한 후 매미가 된다.

호박의 변태의 꿈은 무엇인가. 수박인가. 아니면 늘씬한 오이인가.

그러기는커녕 맨살 같던 피부가 갑각류처럼 껍질만 두꺼워졌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며 놀림을 받는다.

그런 못생긴 호박도 햇살과 바람을 꾀는 재주는 가졌다. 대단하지 않은가. 수박이야 한철이지만 늙은 호박은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먹거리가 된다.

▲제주에서 갈칫국을 만드는 데에는 호박이 필요하다. 은색의 갈치와 초록색의 배추, 그리고 짙은 노란색의 호박 몇 덩이가 있어야 맛의 박자가 맞는 것이다.

음식의 색 조화가 맞는 것이다.

또한 호박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도 다양하다.

호박전, 호박엿, 호박찜, 호박볶음, 호박김치, 호박죽, 호박된장국, 호박구이 등.

▲어떤 날에는 달콤한 바람이 콧등을 스칠 때가 있다.

그 바람이 어떤 경로를 통해 달콤함을 품었는지는 모른다.

우연히 솜사탕 가게를 들렀을까. 

그런 날은 횡재한 느낌이 있다.

음식점에서 호박잎국을 만날 때와 같다. 호박을 이용한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호박잎국이다.

호박잎국의 생명은 걸쭉함 정도에 있다.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넣는데 지나치게 넣으면 너무 걸쭉해 죽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적게 넣으면 밍밍하다. 제주 할머니들의 표현으로는 ‘푸달 푸달’해야 한다. 

또 호박잎국의 장점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방 만들어 뜨거울 때도 좋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차게 먹어도 좋다. 술 먹은 다음날에는 찬 호박잎국을 먹으면 해장이 된다. 먹어본 사람만 안다. 모슬포 사람들이 돈을 빌리면 ‘갚아도(가파도) 좋고, 말아도(마라도) 좋고’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호박잎국이 딱 그렇다. 

호박잎국이 있어 여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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