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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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불필요한 것은 인체 조직에선 사족에 불과하다. 조물주의 작품 중 걸작품이 인체일 것이다. 또 영육(靈肉)의 균형을 위해서도 신체의 품격을 고려했을 법하다,

손가락이 다섯인 이유를 생각게 한다. 창조자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궁리 끝에 엄지와 네 손가락 사이에 기묘한 틈을 냈다. 손아귀다. 네 손가락을 뭉쳐서 엄지가 불끈 힘을 낸다. 사과를 뻐개버릴 만큼의 괴력이 나온다. 맨손에서 그런 힘이 솟다니. 손으로 쥐는 힘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역기를 드는 걸 보며 그 힘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역기를 드는 것은 엄청난 무게를 손아귀에 넣는 것, 한순간에 중량을 장악하는 것이다. 몸에 축적된 힘을 짜 드는 데 쏟아붓는 동작이다. 기술이 힘을 남김없이 내도록 요령의 지혜를 대어 줄 것이다. 운동뿐만 아니다. 힘으로만 우겨넣어 되는 일은 없다.

손은 호모 파베르(Homo fabel), 노작 인간의 상징적 존재이면서 없어선 안되는 필수 도구다. 손이 없어선 안된다 할 만큼 손이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는 한도 끝도 없다. 머리에서 힌트를 주면 만들고 뜯고 조립하고 해체한다. 공작하는 것이다. 대충 만드는 법이 없다. 주무르고 붙이고 깎고 새기며 세공한다.

좍 손을 폈다 여반장(如反掌)으로 뒤집어 본다. 다행히 온전히 갖춘 손, 흠이 없는 규격 제품이다, 신체발부(身體髮膚)를 물려주신 부모님 은혜에 옷깃을 고쳐 감사한다. 그냥 이대로 좋은 손이라 큰 불평불만은 없다. 다만, 좀 더 섬세했으면, 한두 가지 무슨 재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초등학교 때 학이나 바지저고리를 접지 못해 쩔쩔매던 열등한 손매는 나이 들어서도 거기서 거기다.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못질합네 하다 손가락을 치는 어처구니없는 손이다. 동정하지 않으려 하다가도 세파를 같이 한 정리가 있지 않으냐. 사람으로서 모양새를 완벽하게 유지해 온 것 하나만 생각해서도 함부로 눈을 흘기지 못한다.

지난 적을 뒤적이노라니, 기특한 게 하나 있다. 고입 연합고사를 치르던 시절이다. 문제를 손으로 써 인쇄하는 데 내 손이 깜냥으로 그걸 해낸 게 아닌가. 국어는 지문이 얼마나 긴가. 그 중차대한 일을 2년 거푸 해냈단 사실. 요즘은 자판으로 찍어 인쇄에 붙이면 그만이지만 그땐 모두 수작업이라 손이 모처럼 빛을 내었다. 그 회상은 지금도 화창하다. 글씨 하나는 쓰는 손인가. 아, 참 군대에서도 차트병이었으니까.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쥐어짜는 것을 장악한다고 한다. 손안에 붙들어 쥔다는 의미다. 손아귀의 힘이 단순히 악력일 뿐 아니라, 몸 전체 건강의 지표라고 한다. 악력이 약해지면 질환 발생률과 사망률이 높다는 것이다. 잡았던 걸 내려놓는 건 의지의 반영이나, 놓아버리는 행위와는 다르다. 숟가락을 ‘놓다’는 죽음을 뜻한다.

무릇 전쟁의 근본은 상대를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야욕에서 비롯된다. 정치 또한 다르잖은 것 같다. 한쪽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정쟁이 끝까지 이어지게 마련이다. 서로 으르렁대면서.

오래된 악력기를 꺼내 손아귀에 넣었다. 오랜만에 해봐야겠다, 한나, 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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