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完成으로 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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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식 수필가

휴대폰에 글을 쓰고 있다. 병실에서 수필을 쓰고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일주일이 되니 뱁새 발톱만큼의 여유가 생겼다. 복부의 통증은 여전하고, 누워서 글을 쓰려니 팔이 저려온다.

병실의 환우들은 하나둘 퇴원하지만 나는 기약이 없다. 큰 수술을 받았으니 어쩌랴. 이렇게 글이라도 쓰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러고 보면 인터넷에 작품을 올려놓길 참 잘한 것 같다.

몸에 이상을 느껴 정밀 검사를 하게 되었다. 장기臟器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부위가 여러 곳으로 전이되는 위험한 곳이라 했다. 배를 열어 여러 장기를 절반씩 도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깊은 강을 건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대기 환자가 많아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작품집이었다. 틈틈이 써놓은 작품들이 노트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책으로 묶으려면 조금 모자랐고, 더 다듬어야 할 작품도 있었다. 일단 그것들을 완성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입원 전에 몇 편의 초고를 쓴 후, 이미 써 놓은 것들과 함께 인터넷에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두면 병실에서도 다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운 좋게 살아나는 가정이 있어야 했지만, 최대한 완성 시켜보자는 마음이었다. 작품들을 인터넷에 올리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머리를 스쳤다.

노인은 석 달 가까이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다. 초조해진 노인은 조그마한 배로 먼바다까지 나간다. 노인은 지금껏 보지 못한 큰 청새치를 사투 끝에 잡는다. 고기를 뱃전에 묶고 마을로 돌아오다 상어떼의 공격을 받는다. 부상負傷에다 기진맥진이었지만 고기를 묶은 밧줄은 끝내 풀지 않는다.

노인이 상어와 혈투를 벌이면서도 밧줄을 풀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추된 어부의 명예를 만회할 기회이고, 그렇게 큰 고기는 기념비가 될 것이다. 상어에 살점은 다 뜯기고 뼈만 남았지만, 그것은 노인의 자아실현自我實現의 증표가 되리라.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노인과 내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집에 무슨 대단한 내용을 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대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더 나은 글을 남기고 싶고, 이 책이 내 삶의 완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몸 상태는 양호했다. 큰 수술을 앞두면 모두들 불안과 초조를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작품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히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의술이 좋긴 했다. 사경을 헤매었지만 죽지 않고 돌아왔다. 통증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몸을 뒤척일 수도 없고, 진통제를 내리 달고 있었지만, 이제 누워서나마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글은 굼벵이 걸음만큼 조금씩 나아간다. 그러나 언젠가 완성될 것이고, 그것을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다. 무언가를 완성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도 보람과 즐거움을 주는가 보다. 목과 팔이 저리더니 복부 통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진통제도 부탁할 겸 병동病棟 복도라도 한 바퀴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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