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KAIST…” 학부모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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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전, 작가·방송인

필자는 제주 일고 퇴학생이다. 고3 때 단편 소설을 쓴다고 무단결석 20일을 했던 것인데, 거기에는 뻐꾹새 우는 깊은 사연이 있지만, 오래전 일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중요한 것은 퇴학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에 꼭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보고자 결심한 뒤 검정고시와 사범대학을 거쳐 서울의 한 야간 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당시 아이들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상태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퇴학생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희들은 반드시 졸업해라. 그래야 동문(同門)이 남는다.’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7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교직을 접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제자들에게 미안해서 내가 너희 스승이노라고 말하기도 어려운데 고맙게도 당시 제자들이 35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온다.

그런데 몇 해 전 일이다. 역시 스승의 날에 찾아온 제자들과 1차를 하고 2차 술 내기 당구를 친 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동기들보다 나이가 두 살 많던 한 녀석이 슬쩍 다가와서 ‘선생님, 오늘부터 선생님 앞에서 담배 피울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희도 이제 나이가 오십이 넘었잖습니까?’란다. ‘하긴 그렇지’라는 마음에 별생각 없이 ‘뭐 그러자. 이따 네가 대표로 말해라.’하고 허락의 뜻을 비쳤다.

2차 자리에서 예정된 거사가 이루어졌다. ‘이제 저희도 선생님 앞에서 담배 피우게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그 녀석의 건의에 ‘그래라. 앞으로는 맞담배 하자.’라고 흔쾌히 답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다른 녀석들의 표정이 어딘지 싸 해지더니 서로 눈짓을 하고는 그 녀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이어 우당탕 퉁탕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폭탄 맞은 몰골을 한 그 녀석을 데리고 자리로들 돌아왔다. 순간 깜짝 놀라서 ‘아니 이게 무슨 짓들이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리더 격인 제자 왈, ‘선생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나이 들어도 선생님 앞에서 맞담배 안 피우는 건 그래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자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 녀석이 우리를 나쁜 놈으로 만들려 하지 않습니까?’란다. 아, 그 순간 퍼뜩 깨달았다. 지금까지 제자들이 자리를 피해서 담배 피우는 건 힘들어도 선생인 나를 위해서 그러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자신들이 좋은 사람 되고자 스스로 기쁘게 택한 처신이었다!

얼마 전,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어디까지 배웠어? 나 카이스트 나온 사람이야! 내 아이가 우선이지, 내가 당신 교권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한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참으로 개탄스럽다. 물론 카이스트 나왔다는 게 과장으로 밝혀졌지만, 사실은 그게 더 문제다. 학부모가 선생님 앞에 겸손은커녕 거짓으로 허풍이나 떨면서 건방지게 함부로 대하는 판에 과연 아이들이 선생님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교권을 지켜주는 건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이다. 단언하건대 교육은 교권이 살면 반대로 학생들 인권은 죽는, 그런 제로섬 게임의 장(場)이 아니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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