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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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반바지는 무릎까지 내려가는 바지다. 여름철 가볍게 입는다.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철수가 반바지 차림에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삽화가 실렸었다. 낯선 복장이 아니다. 어른들이 한참 뒤에 입어 시차가 있을 뿐이다.

윗옷에 온 소매 반소매가 있으니, 아래옷에 온 바지 반바지가 있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반바지 무엇이 거치적거렸던지 그게 등장하며 눈치께나 살핀건 사실인 것 같다. 한동안 망설이다 내가 반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 15년쯤, 그리 오랜 것 같지 않다. 간결한 걸 선호하는 시대의 흐름에 보조를 맞춘 셈인데, 입다 보니 이내 평상복이 됐으니 적응 속도가 빨랐다.

7부에서 8,9부까지 다양하게 입어, 제한적인 아이템이 없다. 요즘은 20~40대들이 상당히 짧은 쪽으로 대중화하는 경향이다. 그런다고 도를 이탈해 핫팬츠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런 옷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강렬할 것은 불문가지다. 재수 없으려면 중요 부위가 불거지는 순간, 변태(혹은 기행) 취급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서구화됐다지만 한국인에겐 분명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의 DNA가 의식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실례를 들었던 것일 뿐, 실제 반바지는 격식 있는 의상으로는 취급되지 않는다. 공식적 행사에서는 결례로 여긴다는 얘기다. 반바지 바람에 결혼예식장 하객 자리에 앉았거나, 장례식장 빈소에 절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반바지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실용과 합리를 추구하는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많이 입는다고 한다. 기술직, IT의 경우엔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선 무릎이 보이는 차림으로는 사원에 들어가지 못한단다. 일본인들은 자식을 강하게 키운다고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힌다.” 고 한다. 일본을 방문한 우리나라 교장시찰단 몇 분이 한 소학교 교문 앞에서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등교하는 아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커서 무얼 하려고 공부하니?” 바로나온 대답에 까무러질 뻔했다잖은가. “돈 벌려고요.” 무서운 나라다.

축구, 배구, 농구 등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유니폼으로 반바지를 입는다. 땀 흘리는 선수들에게 통풍이 잘되고 움직임이 자유롭고 원활한 특성을 살리자 한 것이다. 하지만 유니폼은 경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해 입는 것으로 일상 속에서 입는 평상복과는 당연히 구별돼야 한다.

나는 반바지를 즐겨 입는다. 올여름처럼 연일 폭염경보가 이어지는 더위엔 반바지 말고 대안이 없다. 옛 어른들같이 모시 베 바지 적삼으로 무장(?)하기도 어려운 시절, 옷감을 구하랴, 손 타랴 간소한 것으로 사 입는 게 백 번 편리하다. 시대를 따르는 것도 생활의 지혜가 아닌가. 여름내 청바지를 입고 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직에서 어김없이 정장하던 습관 탓인지 동네 마트에 갈 때도 긴바지를 입다 주춤해 있다. 단골이라 행여 교장 출신인 걸 알아 눈을 크게 뜨기라도 하면…. 하지만 입어도 상관없게 몸에 밴 것 같다. 며칠 뒤 아내를 따라 나설 땐 반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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