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벌
천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어떻게 살아라는 교과서 배움이지만 실천은 물음표다.

나쁘게 변해지는 얼굴이 자랑인 양 거들먹거려지고 근거 없는 허세는 안하무인으로 가슴의 병을 만들어 낸다.

존재의 이유는 상관할 바 아니다. 혼자 욕심이고 겉으로 친절하고 속으로 음흉하다. 의리와 우정은 필요할 때 잠시 빌려 오고 득과 실 계산기들 두드려 여차하면 보따리를 싼다. 어떤 감동이라도 사흘 잔치이고 유리한 쪽으로 해서 ‘맞다’ 하는 확신에 동그라미를 쳐내고 제멋대로 북 치고 장구 친다.

잘났다 하기 이전에 어떤 위치인지 아픈 반성문을 써야 하고 과거에 나와 진심인 대화를 통해 악과 선 어느 편에서 있는지 냉정한 판정 시험 대에 올라 보자. 약한 자의 어깨에 “힘내라”는 따뜻한 응원에 동전 한 닢을 건네는 수줍은 표정은 감사하고 고맙다.

신이 원하는 그림임을 알아내자 진숙씨는 충분히 존경받았지만 가면 쓴 얼굴 실체와 다르다. 권력을 도구 삼아 많은 이들에게 쓰라린 상처를 입혔고 언제그랬냐 뻔뻔함이다. 양심은 팔아먹은 지 오래됐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해진다. 호불호가 분명해 좋다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껍데기를 벗기면 초라하다. 승승장구 콧대를 세웠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다가 쓰러졌고 의사의 절망적인 진단은 시한부 생명으로 길어야 석달이란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병실을 들었으니 대뜸 앞으로가 궁금하단다.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수 없기에 피하고 도망가고 싶지만 현실은 어둠과 좌절이다. 쓸쓸한 장례식은 그렇다 쳐도 천벌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하고 업장은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니 무슨 방법이 없냐는 간절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했다. 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고. 지금의 심적 부담은 극히 일부분이고 영혼의 세계에서는 몇 배의 거칠고 험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 다음을 준비하는데 전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대의 주인공만 바뀌었고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겠다가 목적이었는데 누구 탓 하리오. 원망은 사치요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고 가시라하니 아이들만큼은 지켜 주고 싶단다. 말로 하지 말고 거리에 나가 박스를 줍는 노인들의 애환도 들어주고 배고픈 이웃이 없나 바쁘게 움직이면 만에 하나 기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하니 당장이라도 퇴원을 하겠단다. 그럼에도 “죗값은 치러야 한다”가 이별 인사 대신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