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의 날’ 오늘 하루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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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8월 낮 평균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보르네오 섬 앞바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 어부들은 줄낚시만으로 길이 2m가 넘는 참치를 잡기 위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여 동안 작은 배에서 살을 맞대며 이곳에서 머무른다.

“하느님, 오늘은 꼭 참치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발 제가 집에 쌀을 사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달이 넘도록 참치를 잡지 못한 어린 어부가 주문을 외듯 간절히 기도하며 미끼를 꽁꽁 싸맨 돌덩이를 바다 속 깊이 내려 보낸다. 하지만 한참동안 기척이 없어 끌어올린 낚시 줄에는 미끼만 쏙 빼먹은 채 가벼워진 낚시바늘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 어린 어부는 속이 상하고 답답하지만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다. 그 이유를 동료 어부가 알려준다. “항상 배 위에서는 슬픔 금지예요. 슬퍼하면 다시는 배를 탈 수 없어요.”

‘우울해 보이는 선원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 이것은 이 배의 원칙이다. 선주와 선장이 우울한 선원들이 선상 폭동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배를 타기 위한 첫 번째 자격 조건은 슬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 말투, 목소리, 자세 등을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고 자신과 일치시키면서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경향. 이를 심리학에서는 ‘감정 전염’이라고 한다. 와트 비즈니스 스쿨의 시갈 바르세이드 교수는 “구성원들의 감정은 섬처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은 감정유발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끊임없이 퍼뜨리고,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그룹으로 일할 때 구성원들의 감정이 바이러스처럼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감정 전염은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그 전염성이 더 높다고 한다. 시카고 대학 존 카시오프 교수는 공포·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은 즐거움 등의 긍정적인 감정보다 인간의 생존 본능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감정 표출도 더 크게 나타나고, 주위 사람들도 자신의 생존 위협을 감지하며 부정적 감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줄낚시로 참치를 잡는 작은 배의 ‘슬픔 금지’ s원칙에 이런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무게를 가득 지고 있는 어린 어부가 망망대해에서 슬프고 괴로운 감정을 억누르며 지내야 하는 심정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서글픔도 밀려온다.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도 슬픔을 금지당한 이들이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감정노동자일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복지종사자와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이 해당될 것이다.

9월 7일은 스물네 번째 맞는 ‘사회복지의 날’이다. 이날 하루만큼은 이들에게 슬픔을 허용하면 어떨까. 참고 참았던 눈물도 흘리고, 많이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에 우리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회복지의 날’ 하루만큼은.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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