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詭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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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남의 소를 도둑질했다. 관가에서 그를 붙잡아 왜 남의 소를 훔쳤느냐고 추궁했다. 그는 변명했다 “길을 가다보니 쓸 만한 노끈이 떨어져 있기에 그 걸 주워서 집으로 왔을 뿐이다, 소 끈에 묶인 소는 보지도 못했다.”

얼핏 보기엔 그럴듯하다. 허나 따져보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다. 소를 훔칠 의도가 없었다고 억지로 둘러대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교활한 속임수를 궤변(詭辯)이라고 한다.

▲궤변의 궤(詭)는 말을 나타내는 언(言)과 위험하다는 위(危)가 합쳐진 글자다. ‘속이다’와 ‘헐뜯다’는 뜻이 들어있다. 변(辯)은 두 명의 죄수(辛)가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리저리 따지며 말하는(言) 모습을 담은 글자다. ‘말 잘한다’ 는 의미다.

궤변은 일상적으로 ‘잘못된 논리 전개를 고의로 이용하고, 발언자에게 유리하도록 도출된 결론과 그 논리의 과정’을 가리킨다. 사전에선 ‘상대편을 이론으로 이기기 위해 상대편의 사고를 혼란시키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꾸며 대는 논법’으로 설명한다.

▲궤변을 잘하는 사람을 궤변론자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가 원조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유(類)의 논리를 전개한다.‘무엇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뿔피리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원래 없더라도) 뿔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양에선 춘추전국시대 명가(名家) 학파가 궤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 중 공손룡은 ‘백마비마(白馬非馬)’론을 궤변의 명제로 삼았다. 즉 백은 색깔을 가리키고 말은 형태를 일컫는 개념이므로 ‘백마는 말이 아니다’는 게 요지다.

▲예나 지금이나 궤변이 판을 친다. 그럴싸한 말로 거짓을 감추는 궤변이 난무하고 있는 게다. 궤변은 진실과 허위를 교묘히 섞어 사람들을 현혹한다. 때론 별별 논리를 죄다 동원해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일으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한다.

최근 정치권이 현안마다 궤변을 늘어놓기 일쑤다. 내 편은 무조건 옳고, 네 편은 무조건 틀렸다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모욕적인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진영 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확증 편향이 증폭된 탓이다. 결국 이를 통해 남는 건 정치 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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