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지 않은 까닭은
매미가 울지 않은 까닭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송이환 수필가

올해는 유난히도 덥다.

매미가 모질게 울고 간 뒤에야 여름은 떠날 준비를 한다고 하던데, 요즘은 도시나 농촌이나 매미의 울음소리 듣기 힘든 세상이다.

그날도 버릇처럼 땅바닥에 시선을 둔 채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발끝에 뭔가 움직이는 미물을 본 것이다. 죽은 매미 한 마리가 눈앞에 들어왔다. 그놈과의 해후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잠시 무릎을 꿇고 자세히 보니 수많은 개미 떼들이 매미의 몸체를 운반하고 있었다. 인간이 죽어서 극락세계로 갈 때 메고 가는 꽃상여와 다름없다. 개미의 바쁜 발걸음에 비해 매미의 모습은 대조적이었다. 죽은 몸까지 타인을 위해 남겨 주면서 너무나 편안하게, 이 세상에 할 일을 다 하고 후회 없이 가는 모습이 성인군자를 닮았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단지 일본에서 어머니를 만나 아이셋 낳고, 해방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신촌리 와을 지경에 정착했다는 말만을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다. 젊은 부부의 달콤한 꿈은 4‧3을 만나면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주둔소 벵듸 들판에 하얀 폭설이 내리던 날, 빨간 동백꽃이 뚝~, 떨어지더니, 온 세상이 캄캄해졌다. 겁에 질린 젊은 아낙네, 등에 업혀있던 갓난아기는 뭔지도 모른 체 엄마 따라 같이 악을 쓰며 울어 재끼는데, 천지가 야단법석이다. 이때 떨어지는 꽃잎 하나가 아기의 등짝에 붙어서 살아생전 족쇄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 어머니는 곶자왈에 가서 나무를 해오곤 했는데, 가끔 가시나무 속에 든 뭉클하고 커다란 벌레를 잡아 와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매미의 애벌레, 그것은 젖이 모자라 허약한 아이들에게 귀한 보약이었다.

유교 사상에서 매미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를 모두 갖춘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임금의 모자 위에는 한 쌍의 매미 날개 형상을 위로 단 익선관 翼蟬冠을 썼으며, 매미처럼 청렴한 생활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조정의 백관들은 매미 날개 형상을 양옆으로 늘어뜨린 관모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어머니는 삶에 허덕이면서도 정말 청빈하게 사셨다. 나는 늘 ‘남의 것을 탐내지 말아라, 너 스스로 벌어서 앞가림하라’라는 말을 꾸준히 들으며 자랐다.

매미의 일생은 하나의 파노라마다. 매미는 7년여 동안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지네 등 천적으로부터 살아남은 일부가 어렵사리 땅 위로 입성한다. 얼마나 감개무량하랴. 하나 그것도 잠시, 되돌아보니 세상 구경 한 달밖에 못 하는 짧은 운명 아니던가. 겨우 한 달이라는 그 짧은 기간에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나마 하루살이의 일생에 비하면 어쩌면 넉넉한 세월이다. 우는 매미는 사내 녀석. 암컷은 벙어리, 반가워도 반갑다는 말 못 하는 벙어리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막중한 임무가 짝을 찾아 종을 잇는 일 아니던가. 그래서 사내 녀석은 더욱 맹렬히 울어 재끼는지도 모른다.

이시돌 요양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가 본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다. 두 아들을 먼저 보내는 참척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저 얼굴, 오직 자식 걱정으로 한평생을 사시다가 너무나 편안하게, 이 세상에 할 일을 다 하고 후회 없이 가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바로 저 매미와 닮았다.

명도암 가족 공동묘지에는 수령이 꽤 된 벚나무가 있다. 버찌가 참 많이 열렸으며, 매미들이 신나게 놀던 장소였다. 상여꾼들이 “니나노~, 난시도, 잘도 돌아간다. 어이차~, 저승 질이 멀다 한들~ 창문밖이보다 더 멀쏘냐~, 어이차~”, 개미들이 따라 한다. “어이차~, 어이차~” . 양지바른 곳 아버지 옆에 어머니를 묻던 날, 그날따라 웬일인지 매미는 조용했다.

허무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살아가는 일, 그 또한 꽃이 피고 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한수선, 조선일보 토요칼럼 4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