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분쟁에 멍든 사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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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종각 지하도를 막 올라오는데/ 새, 한 마리가/ 눈앞을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그 순간 나는 왜 슴새를 떠 올렸을까/ 저 남쪽바다 구굴도나 칠발도나 사수도 같은/ 무인도에서나 살고 있을 그 새를// 종로2가에 나타난 슴새라니!// 무인도에서가 아니라/ 이 붉은 먼지들 속에서 알을 품고 있을,/ …그 흔한 비둘기조차도 슴새가 되어가는 하늘 아래/ 빌딩들 사이로 날아간 새// 그 날개에 나는 한쪽 가슴을 베인 것처럼/ 지하도 입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나희덕 시인의 ‘슴새가 아니었을까’다.

사람으로 북적한 종로2가에서 시인은 슴새가 돼 무인도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사람과 부대끼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었으니 사람이 없는 곳이 낫겠다.

우리나라에서 여름철새인 슴새의 번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구굴도나 칠발도는 전남 신안에 속해 있지만 사수도는 제주에 포함돼 있다.

사수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슴새가 알을 낳는 장소의 하나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또한 사수도 해역은 참조기, 돔, 방어, 삼치 등의 어종이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그러니 이곳과 인접한 지방자치단체는 사수도를 소유하려는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1979년 완도군은 사수도를 장수도로 명명하고 지적까지 부여하면서 당시 북제주군과 갈등을 빚었다.

북제주군은 1919년 사수도를 추자면 여초리 산121번지로 이미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8년 이뤄진 권한쟁의심판에서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며 분쟁이 일단락됐다.

▲그런데 완도군이 지난 4월 사수도 해역에 민간업체가 신청한 해상풍력발전 풍향계측기 설치를 위한 점·사용 허가를 하면서 또다시 두 지역 간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완도군은 바다는 육지와 달리 해상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완도해경의 관할·단속 구역과 어업허가권 등을 고려해 허가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해당 해역이 제주 관할이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재청구한 것.

나희덕 시인이 꿈꾸는 무인도는 어떤 곳일까.

슴새가 자유롭게 비행하는 곳이지, 행정기관 간 법적 분쟁 때문에 법조문이 섬이나 바닷가에 나뒹구는 곳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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