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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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권일 / 수필가·농업인

올여름. 더워도 너무 더웠다. 옴짝달싹에도, 땀이 스멀스멀 비어져 나왔다. 행정안전부 폭염대비 안전 문자가, 카톡마냥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들었다.

그렇지만, 허구한 날 선풍기 앞에서 빈둥거리며, 농사일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집을 나서면,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따가운 햇살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살포 시기 놓치면 낭패인 여름철 병해충 방제 작업. 새벽 댓바람에 시작하여 더위를 피해 보려 하지만, 더운 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작업복에선 헹군 빨래처럼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장화에도 땀이 스며들어 질퍽거린다.

폭염은, 하루가 다르게 몸피를 키워가던 감귤 열매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다. 올해는 육지부 과일 작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대신 감귤은 수확 예상량도 평년을 밑돌고, 품질도 양호해 가격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모처럼 농부들도, 장밋빛 희망에 가슴이 설렜다.

그런데, 껍질이 타들어가는 일사병에 걸린 열매들이 부지기수이고, 설상가상 부패가 진행되면서, 옆 열매들까지 진물에 점염(點染)되어 떨어져 널부러졌다. 특히 토양피복을 한 농장의 낙과가 심해, 새하얀 ‘타이백’ 천이 보이지 않을 정도인 농장들이 적지 않았다.

하우스 감귤들도 혹서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레드향은 껍질이 얇아, 몸피가 커져가면 속절없이 껍질에 균열이 생기며 벌어진다. 때문에 벌어진 열매들을 솎아내는 것이, 여름철 레드향 농사의 주요 작업 목록이다.

그런데, 올해는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 더위 그친다는 처서(處暑) 벌써 지났지만, 무더위와 열대야 이어지면서 열매의 반 이상이 떨어져, 매달았던 끈들만 너덜거리는 나무들 한두 그루 아니다.

허탈과 안타까움으로 속은 타들어 가지만, 속수무책으로 나앉을 수는 없다. 더 이상의 낙과를 막기 위해서는, 벌어진 열매들을 속히 따주어야 한다. 부패한 열매의 진물이 다른 열매들에 묻으면, 같이 부패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마를 스쳐가는 바람결에서, 삽상한 가을기운을 감지했다. 오래지 않아, 농부의 수고로움이 빚은 그릇들마다, 응분의 결실들이 담길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모든 것은, 오롯이 ‘농사의 신’이 결정할 일이다.

그나저나, 무더위보다 더한 삼류 정치판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대통령과 야당은 내외하는 남녀처럼 등 돌리고, 수하(手下)들 간 치졸한 이전투구가 해를 넘긴 지 오래이다. 고물가와 가계부채등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때아닌 카르텔과 이념논쟁, 야당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전·현 정부 ‘누가 누가 잘하나’를 놓고, 헛심 빼느라 하루 해가 짧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 1조 2항이다. 입법·사법· 행정부의 행위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한정적으로 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시적 권력들이 너무 오만하고 방자하게 구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추석이 턱밑이다. 고물가로 힘드시겠지만, 모든 분들이 마음 넉넉한 한가위 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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