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APEC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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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편집국 부국장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유치전에 제주·부산·서울이 도전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분권이었다. 서울은 일찌감치 탈락했다. 제주와 부산이 경합을 벌였고 제주가 우위에 있었다.

개최도시 발표를 앞두고 2004년 4월 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제주지역 3개 전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석권했다. 부산은 18개 선거구 중 17개 선거구를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차지했다.

4·15총선 한달 반 만에 6·5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한나라당 압승, 열린우리당 석패’로 총선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부산에서 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됐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에이펙 부산 유치는 주요 공약이었다. 예정과 달리 개최도시 발표가 일주일 연기됐다. 여기서 반전이 일었다.

보궐선거를 앞둔 2004년 4월 26일, 정부는 에이펙 개최도시를 부산으로 발표했다.

이후 치러진 부산시장 선거는 어땠을까? 에이펙 유치를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에게 25%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19년 전 에이펙 개최도시 선정은 17대 총선과 6·5보궐선거와 맞물려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경제협력과 한반도 평화, 공동 번영이라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선거 대결구도에 휩쓸린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부산 정치권은 에이펙을 선거 이슈로 삼았고, 총선과 보궐선거를 겨냥해 정부를 압박했다. 선정 회의는 물론 개최도시 발표일까지 연기하면서 에이펙은 선거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당시 에이펙 개최도시로 제주가 유력했던 사연이 있었다. 1991년 4월 20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옛 소련의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제주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소 정상회담 이후 제주는 세계 정상회담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996년 4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같은 해 6월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제주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2004년 7월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제주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제주는 회의시설과 호텔시설, 경호·경비가 완벽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에 세계 정상들은 찬사를 쏟아냈다.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이렇게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1996년 4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제주의 봄 정취에 연신 “원더풀”을 외쳤다.

그는 예정에 없던 호텔 주변 산책로를 걷는가 하면 노랗게 물든 유채밭에 들어갔다.

제주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헬기를 타고서도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수차례 돌며 제주 풍광을 마음에 담았다.

요즘 국제 정세가 불안하다.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 제주에서 세계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평화 메시지가 전달됐고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

내년 4월 10일 총선을 전후로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 도시가 결정될 예정이다. 제주·부산·인천·경주 등 4개 도시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번 유치전에도 4·10총선이 개입될지 우려스럽다. 이참에 개최 도시 선정을 선거와 연계할 경우 평가에서 감점을 주는 공정한 잣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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