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량님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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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운(시인/수필가)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일일 가이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일정 좀 말씀해 주세요.”

“예, 먼저 김기량 순교자 기념관을 갑니다. 그리고 성산일출봉 성당, 워터쇼 극장 등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소고기 샤브샤브도 즐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광양천주교회 금빛대학 소풍을 가는 날이다. 한껏 멋을 내고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이 두 대의 버스에 올랐다. 가이드는 주임 신부님이 자청하셨다. 입담이 좋은 신부님은 로마에 유학할 때부터 알바 가이드를 했다며 구수하게 어르신들을 올렸다 내렸다 하신다.

먼저 간 곳은 함덕에 있는 김기량(金耆良 Felix Peter) 순교자 기념관이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2022년 4월 23일 제주시 조천읍에 제주의 첫 사도이자 순교자인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현양하며 복자의 삶과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기념관의 문을 열었다. 지하 경당과 1층 전시관으로 구성된 기념관은 복자 김기량의 생애와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료와 전시물을 담고 있다. 특히 전시물에는 그가 일본에 표류했을 때 만났던 프티장 신부가 기록한 편지 2통 등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김기량은 누구일까? 아마 그는 머지않아 마더 데레사, 성 프란치스코,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같은 반열에 들게 될 제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세계적 성인 중의 한 분으로 시성되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는 병인박해 때 순교자이다. 1816년 제주의 함덕 해수욕장 앞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상인이었으며, 똑똑하여 한 달 만에 천자문을 습득하였고 한다. 배를 사서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하였다.

1857년 42살에 선원 4명과 배를 타고 무역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영국 군함에 발견되었다. 김기량만 생존하여 홍콩의 파리 외방 전교회 극동 대표부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1857년 5월 홍콩에서 루세이유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신부는 제주의 ‘사도’가 되라는 뜻과 ‘행운’이라는 의미를 담아 ‘펠릭스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주었다. 그는 조선으로 돌아와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김기량의 중국 표착 기록은 1846년부터 1884년까지 제주도민의 외국 표류 기록을 담은 「제주계록」에 실려 있다.

조선으로 걸어서 돌아오는데 1년이 걸렸고, 고향인 제주로 내려가기 전에 1858년 베티에서 페롱 신부와 최양업 신부님을 만난 후 제주로 돌아와서 그의 가족과 그의 사공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데 열중하였고, 육지를 오가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제주의 복음화를 위한 김기량 펠리스 베드로의 노력은 1866년 병인박해로 중단된다. 제주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다 1866년 경상도 통영에서 체포됐고, 그는 가혹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자 혹독한 매질을 가했다. 그럼에도 목숨이 붙어 있자 통영의 중영청에서 교수형에 처하고 가슴에 대못을 박아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나이 51세였다. 중영청은 1895년 폐영되기까지 기록이 남아 있는 순교자만 9명이다. 신앙을 증거한 통제영은, 이미 한국 천주교회의 빛나는 순교성지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통제영이 순교지가 된 것은 김기량 복자에게서 비롯되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복자 김기량은 이제 제주에 처음 신앙의 씨앗을 뿌린 명실 공히 ‘제주도의 사도’가 되었다. 복자는 성인품 직전의 단계로 절차를 거쳐 성인품에 오르게 된다.

그는 신앙 가사를 지어 불렀는데 다음과 같다. “어와 벗님들아 순교의 길로 나아가세. 그러나 순교의 길로 나아가기는 어렵다네. 나의 평생소원은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섬기는 것이요. 밤낮으로 바라는 것은 천당뿐이로다.”

김기량은 윤의병(바오로, 1889~1950 피랍) 신부의 군난(窘難) 박해 소설 「은화」(隱花), 즉 ‘숨은 꽃’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김기량의 파도 같은 행적과 올곧은 믿음 살이가 신앙인의 영원한 귀감임을 되뇌이는 사이 무심한 버스는 성산 일출을 향해 바삐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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