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고 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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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가을이다. 영근 곡식을 거두고 갈무리하는 때다. 가을걷이는 풍성하되, 덕분에 더 바빠진다. 결실을 거두는 데 손이 퍽 많이 가서 그렇다. 줄기를 베거나 꺾고, 말려 알곡을 떨어내는 타작, 곧 마당질은 고단하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쬐고 가을볕에는 딸을 쬔다.”는 옛말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하기는 “봄볕에 거슬리면 님도 못 알아본다.”는 옛말도 있다. 봄볕의 자외선 지수가 가을볕보다 높아서 그렇단다.

이렇게 돌고 돌아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볕이 제법 선선해진 바람과 함께 한 해의 결실을 여물게 하니 고맙다.

기후 위기 등과 함께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낯선 말이 요즘 자주 등장한다. 우리 학계에서는 ‘회복탄력성’이라고 곧잘 번역한다. 이 말은 1620년대에 처음 나왔는데, ‘튀어오르다’ 또는 ‘되돌아오다’라는 라틴어 ‘resiliens’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비물질적인 것을 가리켜 우리말 ‘회복(回復)’에 가까운 뜻으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탄성, 압축 후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는 힘’이라는 물리학적 용례가 자리 잡은 것은 1824년께라고 한다. 따라서 ‘회복’은 비물질적인 것, ‘탄력성’은 물질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셈이다.

‘리질리언스’가 학계에 소개된 것은 생태학자인 홀링(C.S.Holling)이 1973년에 발표한 논문을 기원으로 한다. 그는 <생태계의 리질리언스와 평형(Resilience and Stability of Ecological System)>에서 ‘변화나 교란을 흡수하는 생태계의 수용력’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이 개념은 분과학문이 발전하면서 의료, 교육, 사회, 경제, 농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그런데 크게 보면 ‘공학적 리질리언스(Engineering Resilience)’와 ‘생태적 리질리언스(Ecological Resilience)’로 구분할 수 있다.

공학적 리질리언스 관점에서는 생태계를 ‘용수철’과 같은 단순한 시스템으로 본다. 그래서 외부 교란 등으로 파괴된 생태계가 몇 년 안에 회복되는지에 주목한다. 여기에는 ‘회복되는 시간과 효율성’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생태적 리질리언스 관점에서는 생태계를 외부 교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재조직화’를 통해 유지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본다. 그래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시간이나 효율성보다 본래 지닌 지속력을 유지하는 데 주목한다. 따라서 ‘교란 정도’가 생태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인지를 중요한 척도로 활용한다.

기후 변화와 개발 등으로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이 우리의 우려다. 돌고 돌아 올해도 가을볕이 어김없이 찾아왔듯이 ‘아직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지는 않고 있다. 참말 다행이다. 하지만 ‘더욱, 그리고 꾸준히’ 우려해야 한다. ‘자기 재조직화’는 ‘우려’라는 실천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라는 노랫말처럼 당연한 일상을 누리려면 지금 상황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지’를 묻고, 우려해야 한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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