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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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숙, 제주복식문화연구소장

참 좋은 계절이다.

높이 떠 있는 파란 하늘에는 마치 솜뭉치를 뜯어 놓은 듯한 하얀 구름이 떠 있고 한라산은 지척에 있는 것 같이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가슴 가득 들이마시고 싶은 이 청량하고 싸한 바람결이 너무 좋다. 주변을 보아도 익어가는 농작물들로 마음을 더 풍성하게 한다. 지난 여름을 이겨내느라 멍들고 상처가 났어도 그래도 버텨내어 익고 있다.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제법 감이 많이 달렸다고 좋아했는데 장마에 떨어지고 바람에 떨어져서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기록적인 더위와 폭우로 감나무 자신도 지탱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여름 내내 계절이 멈춰 버린 듯 정말 힘들었기에 가을의 청량함이 어느 때보다 더 좋다. 이 가을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가을이 오면 자연스레 우리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 더 좋은 계절이다. 올 가을은 지난 여름이 유난히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럴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나가 살아오면서 견디기 힘든 숨 막히는 더위와 같은 고비도 있었을 것이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앞 뒤가 분간되지 않았던 시절도 겪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어쨌거나 잘 견뎌내었기에 우리는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여름을 이겨내고 맞이한 선물과 같은 이 좋은 가을에 그동안 살아오느라 수고한 나 자신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다.

먼저 깨끗한 백지 한 장을 꺼내고 그동안 수고를 하나씩 적어보려고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에 아쉬움도 있겠지만 순간순간 그 상황에서는 최선을 선택하며 왔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대견하고, 지금 생각해도 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을 것이다. 아니 칭찬할 대목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온 우리는 충분히 선물을 받을 만하기에 올 가을 자신에게 꼭 선물을 주면 좋겠다.

곱게 차려 입고 좋아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따스한 차 한잔을 여유 있게 마시며 참 수고했다고 자신에게 속삭여 봄도 좋겠고, 아니면 나가서 억새가 출렁거리는 들녘에 서서 가슴 가득 바람을 맞으며 자신을 도닥여도 좋겠다. 나도 가을이 오면 늘 생각만 했던 것을 하나씩 하면서 사느라 수고한 나 자신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벌써 가을은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덜어내는 것도 해야 하지만 겨울 채비도 해야만 하는 때다.

늘 자연은 묵묵히 그 계절에 충실하며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가을, 곧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오늘도 그 물음에 답을 찾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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