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초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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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기억 덕분에 지나간 사실을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회로부터 시대가 너무 멀어져서 경험적인 기억이 없는 경우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남긴 유품이나 기록, 회고 자료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대를 유추하게 된다. 

한 시대에도 마치 개인의 얼굴처럼 그 시대 특유의 표정이 있다. 지나간 시대에는 오늘과는 사뭇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 문화, 사회적 풍경들이 있다. 각각의 시대에는 그 시대마다의 공간, 사람, 사건,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을 소비하고 향유함으로써 시대마다의 패턴으로 기억된다. 그 패턴이 바로 그 시대의 얼굴이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늘 시간 속에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지난 사진을 볼 때마다 변화해가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시대의 표정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시대를 읽는 방식이 다르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 각각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 해당 시대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보게 되면 정치적으로는 식민지이고, 경제적으로는 종속된 시장이고, 사회적으로는 일본이 지배하는 행정 체제이고, 미술사적으로는 일본을 통해 이식된 모더니즘 시대이다. 

또 해방공간은 일제로부터 독립된 시대이며 여전히 자본주의 시장이고, 일본이 떠난 뒤 다른 외세가 개입한 시대이자 우리에게는 전쟁과 분단의 시대이다. 그야말로 시민국가 수립의 격동기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시대의 모드가 있는 것이다.    

초상은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으로서 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중섭 시대의 초상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후 1956년 이중섭이 사망할 때까지 같은 세대의 특별한 화가들의 삶과 관계가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화가들의 향토주의가 그것을 뒷받침해준다. 일제강점기 화가들의 작품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상징성이 나타나는데 그 예로서 달을 그리거나, 소와 말, 고향 집을 그리기도 했다. 

한편 당시 공모전 출품을 위한 그림들은 대개가 식민지 현실과 무관한 안락한 포즈의 인물이나 누드,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 정경, 과수원, 전원풍경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일제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식민지 현실이라는 것을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중섭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 형식들을 보면 추상, 반추상, 표현주의, 인상주의가 있었는데 추상은 서정적인 추상과 자연에서 형태를 얻은 반추상이 있었고, 사실주의 계통은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소위 이중섭의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들의 작품 경향은 줄곧 일제강점기의 패턴들이 이어지거나 변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섭과 그 친구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어느 때보다도 화가들에게 어려운 시대였다. 이들의 삶은 굴곡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대의 사회상을 온몸으로 겪은 흔적으로 점철된다. 그야말로 자유를 박탈당하고 자아를 잃어버린 불운한 시대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이번 이중섭미술관에서 기획한 ‘시대의 초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전은 이중섭과 격동기에 함께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비록 지난 시간을 온전하게 되찾을 수는 없지만 당대의 작품 경향과 스타일을 환기함으로써 이중섭의 예술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잃어버린 시간의 미학을 음미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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