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십경(瀛州十景)의 제1경…물과 바람이 다듬은 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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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일출봉의 마을 성산포’의 비경과 비사를 찾아서

일제가 남긴 흉터와 4·3 비극

성산일출봉 18개 갱도진지와
썰물 때 드러나는 유도로…

어업용 다이너마이트 빌미…학살

▲제주 비경의 1번지 성산

산(山)의 모습이 성(城)의 모습을 닮아 성산이고, 산의 이름에서 비롯된 마을이 성산리(城山里)이다. 제주에 유배를 온 추사 김정희 선생의 애제자 매계 이한우(진)는 제주 섬의 비경을 영주십경(瀛州十景)으로 노래하며, 섬의 제1경을 성산출일(城山出日)이라 했다. 지금은 성산일출봉이라 불리지만 원이름은 푸른 숲이 우거진 靑山(청산)이라 불리었다. 지금도 성산 동쪽 바닷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작은 바위를 새끼청산이라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180만여 년 전 낮은 수심의 해저에서 바닷물을 만나 폭발하여 이뤄진 수성화산체인 제주 섬은 20만 년 전후 지금과 같은 섬의 모양을 갖추었다 한다. 성산 역시 해수면의 높이가 지금과 비슷한 시기인 지금으로부터 5천여 년 전 낮은 수심의 해저에서 폭발한 수성화산체로, 폭발 당시 제주 본섬과 떨어진 섬이었다. 5천 년 동안 풍화작용으로 성산에서 떨어져 나온 자갈과 모래를 파도가 옮겨 본섬과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파도가 뭍(陸)과 섬(洲)을 모래(砂)로 이은(繫) 길을 육계사주(陸繫砂洲)라 부른다. 육계사주로 만들어진 사구 언덕, 광치기해변에서 성산을 바라보면 ‘이래서 성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성산은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지었다. 땅(地)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火)가 올라오니 물(水)이 다스렸고, 바람(風)이 성산을 다듬었다. 성산의 비경이 궁금하면 불과 물, 바람에게 그 사연을 들어야 한다. 제주의 제1경 성산에는 비경만큼 비사의 이야기가 많고 깊다.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인근 해안에 성산일출봉을 닮은 바위의 모습.
광치기 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인근 해안에 성산일출봉을 닮은 바위의 모습.

▲일제가 뚫은 ‘성산(城山)의 갱도진지’인 해상특공진지

성산일출봉 남쪽 해안절벽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깨트린 어두운 역사가 드러나 보인다. 일제가 착암기와 다이너마이트, 곡괭이로 성산을 파헤쳐 만든 ‘갱도진지’가 바로 그것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1945년 무렵 패망이 확실해지자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결7호(決七號) 작전을 세워 제주 섬을 군사 요새화하며, 제주에 있는 약 120여 곳의 오름에 약 600여 개의 갱도진지를 구축하는 한편, 성산일출봉·함덕의 서우봉·고산의 수월봉·모슬포의 송악산·서귀포 삼매봉 아래 황우지해안 등의 다섯 곳에 해상특공진지를 만들었다. 1945년 1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전남 광양지방에서 데리고 온 광산노동자가 8백 명 이상 동원되어 일출봉 해안에 갱도진지를 구축했다. 갱도진지 공사는 구멍을 뚫고 다이너마이트를 집어넣어 폭파시킨 뒤 곡괭이로 다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6개월 만에 갱도진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도로를 내고 갱도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나온 돌멩이 등을 손수레에 실어 나르는 작업에는 제주선인들이 동원되었다. 해상특공진지는 특공 병기(소형 잠수정, 어뢰정, 소형 모터 선박) 등을 숨겨두었다가, 연합군 함대가 나타나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한 곳이다. 성산일출봉에는 一 자형 갱도진지 15곳, 벙커형 2곳, 왕(王)자형 1곳 등 총 18개의 갱도진지가 뚫려 있다. 5곳의 해상특공진지 중 일출봉 갱도진지가 총 길이 514m로 가장 길다. 벙커형 갱도진지 2곳은 10m 이내로 길이가 짧다. 입구가 세 곳인 왕(王)자형 갱도진지에는 가운데에도 굴을 뚫어 연결해 놓아 굴의 길이가 125m에 이른다. 경사진 왕(王)자형 갱도진지는 특공 병기를 숨겨 놓는 곳이 아닌, 해상특공진지의 병력들이 생활을 하거나 본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30여 미터의 평탄한 지형인 一자형 갱도진지에 특공 병기를 숨겨 놓았을 것이다. 다섯 곳의 해상특공진지 중 성산 일출봉·고산 수월봉·서귀포 삼매봉 아래 황우지해안 등의 세 곳에는 소형자살보트를 숨겨 놓았고, 함덕의 서우봉과 모슬포 송악산 두 곳에는 인간어뢰 가이텐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논란 중인 ‘갱도진지 또는 동굴진지’의 유도로

성산일출봉 남서쪽 해안에는 수마포(輸馬浦)라 불리는 포구가 있다. 수마포에서 성산일출봉을 향해 150여 미터 모래사장을 걸어가다 보면, 성산일출봉 해안절벽에 파 놓은 갱도진지들을 볼 수 있다. ‘갱도진지’라 불리는 게 맞느냐, ‘동굴진지’라 불리는 게 맞느냐 하는 논쟁이 여전히 있어 보인다. 갱도는 인간이 조성한 굴이고, 동굴은 자연이 조성한 굴이다. 성산일출봉에 뚫린 땅굴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11호로 지정되어 있는 바, 문화재청의 공식명칭으로 ‘제주 일출봉 해안 일제 동굴진지’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해상특공진지마다 문화재청이 만들어 놓은 표지판의 이름이 다르다. 어느 곳은 ‘갱도진지’, 어느 곳은 ‘동굴진지’라 불린다. 이에 대한 문화재청의 공식명칭이 통일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러 번 이곳을 찾아다닌 필자는 18개의 갱도진지를 모두 탐사하였다. 숲으로 가려져 들어갈 수 없는 두 곳의 일자형 동굴진지를 제외하고, 모든 갱도진지를 살펴보았고, 간조 때는 一자형 갱도진지에 숨겼던 특공병기들이 바다로 내려갈 때 사용되었던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 유도로의 모습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유도로는 세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유도로는 지금, 태풍과 파도 등으로 형체가 유실되다 남은 콘크리트 잔해들이 뒤집어져 있다. 썰물 때에는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간 유도로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유도로 위에 깔렸던 철로는 해방을 맞이한 이 지역 주민들이 뜯어, 불에 녹여 어로 기구 또는 농기구로 만들었을 것이다. 

▲일제가 남긴 다이너마이트로 인한 4·3의 비극

해방 후 이 지역 주민들은 일본군이 갱도진지를 만들 때 사용하다 남긴 다이너마이트를 어업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한다. 1948년 겨울, 오조리 지역 주민들이 마을경비용으로 사용하려고 초소에 보관해 두었던 다이너마이트가 서북청년단에 알려지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다이너마이트로 서청을 죽이려 했다는 억지 누명으로 공회당에 끌려가 고문 취조를 받았고, 다음 해 1월 2일 우뭇개동산에서 23명이 집단으로 학살되었다. 제주의 제1경 성산일출봉이 품은 비경의 아름다움만 보면 관광이고, 신화와 설화 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만나면 여행이다. 관광은 눈(目)으로 보는 것이고, 여행은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를 눈매(眼)로 만나는 것이리라. 제주 섬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비경 속에 신화와 설화,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비경의 아름다움만 보면 관광이고, 역사와 문화를 만나면 여행이다. 관광은 보는 것(見)이고, 여행은 만나는 것(遇)이란 생각이 더욱 이는 곳이 성산일출봉이다. 

글·사진=고수향 세계자연유산해설사 겸 ㈔질토래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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