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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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시는데 그런 날은 왠지 불안하고 손에 일이 안 잡히네요. 분명 친정인데 낯선 손님 같고 오셔서는 무심히 지켜만 보시는데 무섭지만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요?

-살아생전에 아버님과의 관계는 어떠셨어요?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데면데면 살가운 정이 없었어요. 아니, 나빴다가 맞을 거예요.

-그런데 두 분을 합장하셨네요?

저희도 그것 때문에 고민했는데 아버지가 참전용사셨고 핑계지만 따로 관리하기 무리여서 상의 후 호국원에 모셨어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알아봐야겠지만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싫은 걸 억지로 참는 건 고역이니까요.

흔하지 않은 경우이지만 충분한 공감과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원인을 알면 문제 해결은 비교적 수월한데 의외로 설득에 약하다. 달리 고집을 부려서 득 될 것도 없고 영혼을 불러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속 시원히 하라 하니 남긴 재산이 있는데 어떻게 될까 안절부절 걱정이란다. 아이들이 서로 바쁘다 보니 왕래 없는 것도 걸리고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생활했을 때는 무척이나 쓸쓸했단다. 남편에 대한 원망은 한숨 썩힌 푸념 그만하자 손사래다.

그대로를 전했더니 아드님이 보충 설명을 해 주었다. 부친께서 가정이 있으시면서 총각인 양 속여 임신을 시켰고 곧바로 이혼한다 한바탕 소란 뒤에 살림을 차렸으나 노름에 바람기까지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 온갖 고생을 다 시키더니 돌연 객사했단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남은 식구를 위해 모질어야 하는 이유를 가져야 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야 부모님의 혼인신고가 안 돼 있어 자신들이 먼저 부인의 호적에 올려져 있었단다. 한평생을 애 끓이신 분이 아무 관계도 없는 남으로 어떤 흔적도 남겨 있지 않았단다. 본인 명의에 땅과 집은 물론 상당한 액수에 저금까지.

뒤늦게 유전자 검사를 해서 증거를 첨부하고 법원에 제출,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여러 가지 상황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해결될 거라 하면서도 못내 슬픈 표정이다. 나 몰라라 병든 노모를 동생들에게 떠맡겨 죄송하다며 흘리는 눈물은 늦어버린 후회. 평소에 웃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당부에 ‘알았다.’ 대답하고 이번에는 머리가 까만 채 아름다운 모습으로 와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고맙다 인사는 죽음은 잠시 몸을 벗어난 것이지 정신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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