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나무 아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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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근린공원에서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벤치입니다. 사철 푸르고 향기 좋은 비자나무 아래가 내 자리입니다. 누구나 잠시 쉬어 가는 곳이지요. 새벽부터 늦은 저녁에도 주민들이 즐겨 찾을 만큼 인기가 좋답니다. 곁의 소나무 아래는 갖가지 운동기구를 설치해, 체력 단련을 위해 땀을 흘리는 모습은 건강에 관한 관심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줍니다. 운동장을 도는 트랙이며 농구대까지. 가끔 청소년들도 끼리끼리 어울려 공부에 지친 스트레스를 풀고 갑니다.

겨울이면 양지 바르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내리는 자리라 빈 채로 있을 때가 별로 없어요. 주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도 잔디 마당의 까치를 쫓느라 노상 소란스러운 최고의 놀이터입니다. 그들의 재롱에 공원은 잠시 활기가 넘친답니다.

쉼터인 만큼 갖가지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세상살이는 비슷비슷해 너와 내가 별로 다르지 않은, 기쁨과 근심거리를 품고 있는 게 삶인가 봅니다. 중년 여인은 친구를 곁에 앉히고 넋두리가 한창입니다. 답답하다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하네요. 그러다 손을 잡아 다독여 주기도 하고. 가장 좋은 친구는 말없이 상대방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매일 오다시피 하는 노부부가 운동장을 돕니다. 처음에는 나란히 걷다 아내가 뒤로 처칩니다. 앞서 부지런히 걷던 남편이 잠시 기다려 주거나 뒤돌아 걸어 아내와 걸음을 맞춥니다. 부부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사에 서로 걸음 맞추듯 살아가는 관계가 아닐까요. 황혼 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꽃노을처럼 아름답습니다.

아침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다가옵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엄마가 얼마나 반가운지요. 방실방실 웃는 게 백일쯤 될까. 귀한 아기를 보고는 주위의 나무와 꽃들이 살랑살랑 몸짓으로 사랑 인사를 건넵니다. 잠에 겨워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는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아기가 곤하게 잠이 들자 엄마는 스마트폰에 빠져서 무아지경입니다.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휴식이 필요하겠지요. 아기가 꿀잠을 오래 잤으면 좋겠네요.

늘 측은하게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있답니다. 바라보기조차 안쓰러운 그녀는 병이 있어 보입니다. 큰 키에 왜소한 체격으로 천천히 걷는 데도 걸음이 불안정합니다. 표정이 하도 어두워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요. 곁에서 그녀의 아픔을 덜어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여자 어르신 얘기입니다. 작년 이른 봄 옆 의자에서 하루를 보내던 분입니다. 입성은 남루하지 않으나 표정에 변화가 없이 종일 해 바라기하며 꾸벅꾸벅 졸다 옆으로 비스듬히 눕곤 했지요. 여름이 되자 자리를 소나무 아래로 옮겨 갖고 온 가방을 베개 삼아 아예 잠을 청하곤 했어요. 가족이 없거나 갈 곳이 없는지. 초겨울이 접어들자 홀연히 발길이 끊어졌어요. 안부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눈에 익어 가족 같은 주민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마음 한자리를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따뜻한 동네였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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