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그릇
검은 그릇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미선 수필가

화장대 위에 검은 그릇 하나 놓여 있다. 면세점도 없는 곳에서 언어조차 통하지 않아도 기어코 나를 따라온 그릇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밥이나 국을 담을 수 있는 생활 용기도 아니다. 평범하지 않은 이 그릇, 이제야 들춰본다.

네팔 여행 중에서다. 이곳은 오지 여행에 가깝다. 인도 북부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온종일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비포장도로를 달려 어두워질 즈음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나름대로 번화하다는 시내에는 좁은 도로에 차 댈 곳도 찾기 어렵게 복잡하다. 하필 시내에 순례할 사원이 있어 이곳을 지나야 했다.

네팔에도 불교가 남아있어 룸비니에서 이곳까지 왔다. 네팔에서 백 년이 된다는 사원으로 유명한 티베트 사원을 찾았다. 사원 안에 들어섰다. 대웅전 안에는 얼마나 양초 공양에 그을렸는지 안에는 새까만 그을음이 가득했다. 커다란 철판에는 납작한 양초 백 개가 담겨 시주자를 기다린다. 마당에는 탑과 전각이 흰색으로 서 있다. 탑 중간 어디엔가 매직아이라 부르는 커다란 눈이 푸른색으로 그려 있다.

내려오는 길이다. 손수레 가게 두 곳이 있다. 골동품만 잔뜩 채워진 듯하다. 구릿빛 피부에 눈동자가 새까만 주인은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의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반사되자 애처로웠다. 짧은 시간에 흐릿해지는 시력으로 물건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거칠지 않아 뭔가에 끌리듯 검은 그릇을 잡고 말았다. 몇십 달러의 인연으로 애지중지 모셔가며 싸고 또 싸서 옮겨왔다.

가볍지도 않은 그릇은 무엇에 사용할지 생각하지 않았다. 무턱대고 안팎으로 조각이 세심하여 면면을 천천히 보고 싶어 내 가방에 넣고 말았다. 나무를 깎아낸 조각으로 보이고 틀로 찍어낸 토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토기라면 검은색과 세심한 그림을 새겨넣기 만무하다. 그릇 안에도 섬세한 조각칼로 깊고 낮음에 손을 댄 흔적은 숙련공이 한 점 한 점 살을 깎아냈다.

돋보기를 쓰고 검은 그릇 안을 살폈다. 각기 다른 향로 세 개가 옆면에 새겨졌다. 원형의 법륜 속에 연꽃 창살 무늬도 한군데 새겼다. 금강저의 모습도 보인다. 무늬는 모두 들어가고 나오며 끈으로 이어졌다. 이제 살펴보니 그릇 바닥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살아있게 표현하였다.

외부 면의 촉감조차 심상치가 않다. 오톨도톨한 조각은 무엇인지 궁금점이 더해갔다. 승천하려는 용이 열 마리도 더 되게 그릇을 감싸고 있다. 용의 비늘과 발톱까지 세세히 조각되었다. 어미에서 새끼에 이르는 한 가족처럼 위아래를 연결하고 있다.

바닥은 또 어떤가. 가운데 중심에서 회오리처럼 돌려지다 굽에 이르러서는 물결로 보인다. 어느 순간 구름으로 보이는가 하면 매일 뜨고 지는 태양 같기도 하고 빈 곳이 없다. 구부러진 곡선은 화가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상시킨다. 오묘하여 보면 볼수록 끊임없는 상상을 하게 하였다.

무엇에 사용해볼까. 향로가 있고 법륜 그림과 금강저가 있으니 염주나 단주를 담아두면 좋겠다. 손쉽게 접하는 단주를 한곳에 모아두는 것도 안성맞춤이다. 네팔에서 사 온 단주 여러 개를 담았다. 보석빛에 가까운 재질의 단주도 검은 그릇 속에서 더욱 빛났다. 천 주를 담아 염불할 때 돌리면 기가 막히겠다. 내 안에 굴러온 검은 그릇을 고이 모시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