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鄕校)에서 덕행(德行)을 익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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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21C제주유교문화발전연구원장/수필가

향교는 왕조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고 선비를 배출했던 관학중등학교로써 유교 교육과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두 가지 기능을 담당했다. 향교에는 조정에서 학전(學田)을 주어 비용에 충당토록하고 향교의 성쇠(盛衰)에 따라 지방수령의 인사평정기준으로 삼았으니 관리들의 관심이 오죽했으랴!

당시 제주향교의 경내에는 중국과 한국의 유현(儒賢)위패를 배향했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었다. 또한 배움의 전당 명륜당과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글을 읽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었는데 동재에는 양반(兩班), 서재에는 서류(庶流)가 묵었다. 당초 제주향교는 133위(位)의 유현(儒賢)을 봉안하는 대설위(大設位)향교였으나 1951년 성균관 유림총의로 중국유현(儒賢)94위는 매안(埋安)처리하였다. 나머지 공자를 비롯한 중국성현(聖賢) 21위와 우리나라 18유현 등 39위만 대성전(大成殿)으로 승전(承傳) 봉안(奉安)하는 중설위 향교로써 오늘에 이른다.

그러저러한 사정으로 현재 제주향교의 보전 실태를 살펴보면 동무와 서무는 커녕 동재와 서재마저 형체가 없다. 유교 문화의 가치와 전통 문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 조속히 복원하면 좋을 것 같다.

한편 조선 중기 전란과 서원(書院)의 무분별한 등장으로 향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894년(고종31) 갑오개혁 이후 과거제의 폐지, 학제 개편 등 교육기관으로써의 기능은 상실해 문묘기능 위주로 수행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학문 체험이나 습의(習儀 : 옛 의식 행사 연습) 과정 등 교육기능의 여운(餘運)은 희미하지만 아직도 잔재한다.

공자가 주장하는 유교문화는 일반종교처럼 기복(祈福)사상이 아니며 신을 초월한 인간중심사상으로 일반 종교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교는 인간의 도리(道理)를 밝힌 사상, 즉, 삶의 이치(理致)를 구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유학사상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확실하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어는 학문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연구되며 읽히는지 모르겠다. 「논어 11편(선진)」에 “…감문사(敢問死) 왈…. 미지생(未知生)이면 언지사(焉知死)리오?” 라고 했다. 공자의 제자가 사후 세계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께서는 “삶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미루어보건데 공자는 사후세계보다 현실 문제에 관심을 더 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근래 제주 지역에서는 5대 강력 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한다. 전국 인구 대비 범죄 관련 지표가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향교가 실행하는 경전 관리, 충효 예절 교실, 인성 교육은 덕행을 기리고 윤리 도덕을 체득하는 원점이다. 또한 성현에 대한 고유례(告由禮), 삭망례(朔望禮), 석전대제(釋奠大祭)등 의식행사, 전통혼례, 원로유림의 충언과 여타 유교문화 체험이 향교에서 진행된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 하지 않는가.

고위관리부터 관심을 갖게 되면 시민, 학생, 청소년, 사회단체 등에서는 자연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현대 향교가 지향하는 목표가 여기에 있으니 하는 말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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