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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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편집국 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정치인과 선출직 고위 공무원의 말에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잘못된 ‘혀 놀림’은 다시 자신의 입으로 되돌아와 설화(舌禍)를 당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부적절한 발언,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부지기수다.

김은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지난 7월 혁신위 청년들과 가진 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투표해야 하느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김 전 혁신위원장은 논란이 거세지자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하며 “노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사회 지도층의 설화는 과거에도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한 발언이 국회를 넘어 진보와 보수를 극명하게 양분시키는 갈등을 낳았다. 윤 대통령이 지나가면서 뱉은 발언에 대한 해석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X팔려서 어떡하나’로 갈렸다. 진보진영에는 ‘바이든’으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에게는 ‘날리면’으로 들리는 희한한 발언으로 한동안 정국이 어수선했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2016년 언론사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당시 교육부는 나 전 정책기획관을 대기발령 조치했고, 이후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실추시킨 점 등을 지적하며 파면을 결정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00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도 같은해 11월 강연에서  “60세가 넘으며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바른미래당 소속이던 2019년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 요구에도 물러나지 않는 손학규 대표에게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김광수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이 지난 9월 15일 도의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귀북초등학교 학생들의 통학로 확보를 위해 운동장 북쪽을 따라 조성된 ‘흙담소나무’를 베어내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김 교육감은 “소나무를 제거하면 운동장과 길이 넓어진다. 내년쯤 결단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발언했다.

‘흙담소나무’가 있는 서귀포시 서홍동 마을회장, 주민자치위원회 임원, 학교운영위원장 등 지역 주민들은 닷새 뒤 제주도교육청을 항의 방문했고 김 교육감은 “소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소통을 강조해 온 김 교육감이 자신이 내뱉은 발언으로 인해 주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흙담소나무’는 화재 등 마을의 액운을 막기 위해 1910년께 조성된 소나무 군락으로 2004년 마을 보호수로 지정됐고, 주민들이 지정한 ‘서홍 8경’의 하나라는 점을 김 교육감이 간과한 것이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고 했다. 엎질러진 물은 그릇에 다시 담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한 번 뱉은 말은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 지도자의 입은 무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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