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해녀의 연금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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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찬, 수필가

산수(80세)의 고령 해녀가 물질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서늘하다. 본인 스스로 체력이 전과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자녀들도 그만두기를 바라는데 굳이 입어해서 사고를 당하고 주위를 슬프게 할까.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시대와 비교하면 너무나 풍족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결코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당시에 고령 해녀의 손은 테왁 대신 아기 구덕에 걸쳐있었고 젊은 며느리가 대신 이어받아 바다 가운데 있었다. 바다는 늘 젊고 활기가 넘쳤다.

경로당 지어놓고 편히 쉬고 즐기라고 하지만, 젊을 때 즐겨봐야 즐길 줄 알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서 움직일 수만 있다면 테왁을 벗함만 못해 절뚝이면서도 바다로 가는 길이 즐거운 고령 해녀다. 바다가 직장이자 휴식처이고 즐거움이 있어 해녀는 바다에서 주름살이 늘지 않는다. 어찌 자녀들이 말리고 행정에서 퇴직하라 종용한다고 쉽게 그만두겠는가.

시집가기 전에는 집안의 살림을 위해서 살았다.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책가방 한번 쥐어보지 못하고. 숨비소리에 약이 나오고 연필이 나오고 옷이 나왔다. 딸들은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숙명으로 여겼다. ‘우리 딸은 절대 해녀 질 못하게 하겠다’고 학교로 보낸 딸도 중학생이 되면 우뭇가사리나 미역 채취하는 날에는 조퇴후 바삐 교문 밖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그래도 복 받은 소녀다. 운동장을 밟지 못한 여자가 더 많았으니까.

1960년대까지는 물질 잘하는 처녀가 최고의 신붓감이었다. 당시 해녀 수는 2만3000명을 넘었는데 1986년 통계에는 6627명으로 급감한다. 2022년도는 겨우 3000명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전설이 될 것만 같다. 이는 교육 수준의 향상과 힘든 해녀 질을 전승시키지 않겠다는 해녀 어머니의 소망이고 결실이다.

1970년대 급속하게 도입된 고무 잠수복으로 그간 소중이를 입고 여름에 2~3시간, 겨울에 30분, 수심 5~10m 이내에서 물질하던 것이 더 깊은 곳에서 5시간 이상 작업할 수 있게 돼 5배 이상으로 어획량이 늘며 소득에 많은 도움을 줬지만 자원 고갈과 부력 방지를 위해 착용한 납덩이로 요통에 시달리게 됐다. 또한 위장병과 청각장애를 얻었다. 잠수복 안 배설물로 피부병까지 얻어 경력에 따라 복용하는 약의 방울 수가 늘어만 간다. 배운 게 잠수 일이고 숨비소리 횟수에 따라 가계에 도움이 된다는 일념으로 죽을 병이 아니면 테왁을 띄운다. 해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낭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녀들의 설움과 희생을 생각이나 할까.

75세 이상 고령 해녀가 안전을 위해 은퇴하면 5년간 50만 원씩 수당을 지급하는 행정에 고마움을 느낀다. 금채기가 풀리면 밭 구석이나 다름없는 소라와 천초 바닷 속을 꿈에서도 잊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100세 시대에 걸맞게 10년 수당으로 경제적 안정과 바다로 향하는 마음을 쉼터로 향하게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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